윤순지

윤순지 (尹順之, 1591년 ~ 1666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례(敬禮), 호는 유하(柳下)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생애 윤순지는 1591년(선조 24)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윤원거(尹元擧)이며, 어머니는 김덕함(金德咸)의 딸이다. 외조부는 좌의정을 지낸 정엽(鄭曄)이다.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재위 시에는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일 효종)의 사부(師傅)를 지내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이후 사헌부 지평(持平), 사간원 정언(正言), 병조참의(兵曹參議), 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발했을 때는 대명(對明) 관계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화친을 주장하는 김류(金瑬)의 천거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나, 강화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명길(崔鳴吉) 등에게 탄핵을 받기도 했다. 이후 다시 이조참판(吏曹參判)과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효종 대에는 다시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고, 1656년(효종 7)에는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1657년(효종 8)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이후에도 현종 대에 잠시 관직에 복귀하기도 했다. 1666년(현종 7)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윤순지는 서인(西人) 계열의 인물로,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학문과 인품을 높이 평가했을 정도로 당대의 존경받는 학자였다. 예학(禮學)에도 조예가 깊어 여러 예론(禮論)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서 저서로는 문집인 『유하집』(柳下集)이 있다.

사후 사후에 문정(文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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