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중
윤석중(尹石重, 1911년 5월 25일 ~ 2003년 12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 시인, 언론인이다. 호는 석동(石童)이며,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한국 동요의 아버지'로 불린다.
생애
윤석중은 1911년 5월 25일 서울 중구 수표동 13번지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 자녀로 태어났다. 형제들이 일찍 죽어 사실상 독자로 자랐으며,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름 '석중(石重)'은 '돌처럼 무거워 날아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921년 교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5년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29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의거)이 발발하자 이에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하였다. 이후 1939년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 유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문학 활동
윤석중은 13세였던 1924년 아동문학잡지 《신소년》에 동요 〈봄〉이 입선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5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극 〈올빼미의 눈〉이 뽑혔고, 같은 해 소파 방정환이 발행하던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동요 〈오뚜기〉가 당선되어 아동문학가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26년 〈조선물산장려가〉가 당선되면서 '천재소년예술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1931년 방정환 사후 《어린이》의 주간을 맡아 한국 아동문학의 선구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소년중앙》, 《소년》, 《소학생》 등의 주간을 지냈고,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역임하였다. 1956년에는 조풍연, 피천득, 어효선 등과 함께 어린이문화운동 단체 '새싹회'를 창립하였다.
작품 세계
윤석중은 평생 약 1,300여 편의 동시를 창작하였으며, 그중 약 800편이 동요로 작곡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짝짝궁〉, 〈퐁당퐁당〉, 〈고추 먹고 맴맴〉, 〈낮에 나온 반달〉, 〈우산 셋이〉, 〈바람〉, 〈넉점 반〉, 〈숨바꼭질〉 등이 있다.
그의 동요 세계는 초기에는 4·4조나 7·5조의 정형동요 형태와 반복·대구의 기법을 사용하는 민요풍의 특징을 보였으나, 이후 시적 동요로 발전하였다. 작품의 소재는 어린이들의 일상과 자연에서 주로 찾았으며, 낙천주의적 정서를 바탕으로 어린이들의 밝고 긍정적인 정서를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19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집으로 알려진 《윤석중 동요집》을 출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동요집 《잃어버린 댕기》(1933), 《어깨동무》(1940), 《초생달》(1946), 《굴렁쇠》(1948), 《엄마손》(1960), 동요·동시집 《여든 살 먹은 아이》(1990), 《그 얼마나 고마우냐》(1994), 《반갑구나 반가워》(1995) 등이 있으며, 그의 기간 작품들은 《윤석중전집》(전 30권, 1988)에 집성되었다.
사회 활동 및 상훈
윤석중은 아동문학 창작 외에도 여러 사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1974년 방송용어심의위원장, 1977년 《새싹문학》 주간, 1979년 방송윤리위원장,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초대 방송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86년 원로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그의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3·1문화상(1961), 문화훈장 국민장(1966), 외솔상(1973), 라몬 막사이사이상(1978), 대한민국 문학상(1982), 세종문화상(1983), 대한민국예술원상(1989), 인촌상(1992) 등이 있다.
사망 및 추모
윤석중은 2003년 12월 9일 노환으로 별세하였으며, 향년 93세였다.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국가사회봉헌자묘역에 안장되었다. 2005년부터 새싹회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윤석중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