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구(尹鳳九)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 또는 구암(久菴)이다. 생몰연대는 자료에 따라 1681년~1767년 또는 1683년~1767년으로 표기되어 있어 정확한 출생 연도는 문헌 간 차이가 있다. 우참찬 윤봉오(尹鳳五)의 형이며,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윤봉구는 1714년(숙종 40) 진사시에 합격한 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1725년(영조 1) 청도군수가 되었다. 이후 사헌부지평, 장령, 집의 등의 관직을 거쳤으며, 영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사부로서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741년 부호군으로 있을 때 주자(朱子)를 보은 춘추사의 송시열 영당에 추봉할 것을 주장하다가 삭직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군자감정이 되었다. 이후 사과, 진선, 서연관, 찬선 등을 거쳐 1760년 대사헌에 특별 임명되었고, 1763년에는 지돈녕과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학문적으로 윤봉구는 한원진, 이간, 현상벽, 채지홍 등과 함께 권상하 문하에서 수학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서로 다르다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여 호론(湖論)의 계보를 형성하였다. 그의 학설을 요약하면,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형성되기 이전에 부여되는 천리(天理)는 동일하나, 만물이 형성된 뒤에 부여된 이(理), 즉 성(性)은 존재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성리학적 전통 안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본 낙론(洛論)과 대립하는 입장으로,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윤봉구의 생애는 현실 정치 활동보다 심성론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적 입론에 치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술 역시 경전의 강의나 주석 및 성리설이 주를 이룬다. 저서로는 『병계집(屛溪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그의 초상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된 대형 초상화로, 2012년 7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충청북도 제천시의 제천의병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