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陸羽, 733년 ~ 804년)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인이자 차(茶) 연구가로,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다경(茶經)》을 저술한 인물이다. 자는 홍점(鴻漸), 호는 상저옹(桑苧翁)이며, 후세에 '다성(茶聖)' 또는 '다신(茶神)'으로 추앙받았다.
출생과 성장 과정
육우는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현재의 후베이성 톈먼시) 출신이다. 3세 때 호숫가에 버려졌던 것을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거두어 길렀다. 성은 주지의 성을 따라 '육(陸)'으로, 이름은 점을 쳐서 점괘에 따라 '우(羽)'로 지었다. 어려서 지적선사는 육우가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육우는 유교를 배우고자 하였다. 이에 지적선사가 고된 일을 시켰지만, 육우는 대나무 가지로 가축의 등에 글씨를 연습하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후 절을 떠나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천보(天寶) 5년(746년)에 경릉태수 이제물(李齊物)의 눈에 들어 그의 추천으로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경릉의 사마(司馬) 최국보(崔國輔)를 만나 교유하며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정신을 이상으로 삼게 되었다.
차 연구와 《다경》 저술
지덕(至德) 원년(756년)에 안사의 난을 피해 강남으로 피신하였고, 상원(上元) 원년(760년)에 오흥현(吳興縣, 현재의 저장성 우싱구)에 암자를 짓고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이라 하고 저술에 몰두하였다. 이곳에서 승려 교연(皎然)과 친분을 쌓았으며, 여러 차 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조정에서 그를 태자문학(太子文學)이나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육우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건중(建中) 원년(780년), 14년간의 차 연구를 정리하여 《다경》 3권을 저술하였다. 《다경》은 차의 기원, 재배법, 가공법, 다기(茶器), 차 달이는 법, 마시는 법, 차의 역사와 산지 등 차에 관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이다.
교유 관계와 말년
대력(大曆) 연간에는 호주자사(湖州刺使) 안진경(顔眞卿)과 교제하였으며, 안진경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편집에 참여하였다. 어사대부 이계향(李季鄕)과의 일화로 〈훼다론(毁茶論)〉을 쓰기도 하였다.
804년, 72세의 나이로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묘는 항주(杭州)에 있으며, 1995년 항주시 인민위원회가 묘역에 '당옹육우지묘(唐翁陸羽之墓)'라는 비석을 세웠다.
역사적 의의
육우는 차를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학문으로 승격시켰다. 그가 정립한 차 문화의 기준은 이후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차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다경》에서 처음으로 '다도(茶道)'라는 개념을 언급하였으며, '정행검덕'의 정신을 강조하여 차 마시는 행위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