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유형(有炯, 1824년~1889년)은 조선 후기·개항기의 승려이다. 호는 설두(雪竇)이며, 흔히 '설두 유형(雪竇有炯)'으로 통칭된다. 성은 이씨(李氏)이고 본관은 완산(完山李氏)으로 전해진다. 19세기 한국 불교의 화엄학 강백(講伯)이자 선(禪) 논쟁의 주요 논자로서, 『선원소류(禪源溯流)』를 저술하여 스승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삼종선(三種禪)설을 옹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전라도 옥과현(玉果縣, 현 전남 곡성군 옥과면 일대) 출신으로, 아버지는 동복(東馥), 어머니는 박씨(朴氏)로 전한다. 유년기에 향숙(鄕塾)에서 유학(儒學) 경전과 사서(史書)를 익혔고, 19세에 백암산(또는 백양산) 지장암에서 쾌일(快逸)을 은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듬해 구족계를 받고 조계산(또는 조계사)의 한성(翰醒)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우는 등 여러 대덕에게 교학을 문답하였으며, 이후 영구산에서 긍선의 강회에 참여하여 학업을 마쳤다. 도원(道圓)의 법맥을 이었고, 28세에 긍선의 강석(講席)을 이어받아 화엄 강주가 되어 20여 년간 학인을 지도하였다.
1870년(고종 7)에는 퇴락하여 빈터로 남아 있던 영광 모악산 불갑사(佛岬寺)로 옮겨 절을 중창하였다. 1889년 양주 천마산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 강회를 열어 강독하고 『선원소류』와 『염송회편(拈頌會編)』을 저술한 뒤, 그해 입적하였다. 세수 65세, 법랍 48세로 전한다.
사상과 저술 유형은 백파 긍선이 『선문수경(禪文手鏡)』에서 제시한 삼종선, 즉 조사선(祖師禪)·여래선(如來禪)·의리선(義理禪)의 구분과 조사선의 우월성, 그리고 선(禪)과 교(敎)가 다르다는 논리를 지지하였다. 긍선의 이 주장에 대해 의순(意恂)이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에서 "모든 선은 평등하며 선과 교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반박하였고, 긍선과 의순 사후에 홍기(洪基)가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에서 의순의 견해를 지지하자, 유형은 『선원소류』를 지어 두 책의 논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반박하였다.
저서로는 『선원소류』 1권과 『설두시집(雪竇詩集)』이 알려져 있고, 『염송회편』을 편찬한 것으로 전한다. 서관(瑞寬)·태선(太先)과 함께 화엄주의 3대 강백으로 일컬어졌으며, 법맥은 긍선–인유(仁裕)–국찬(國燦)–쾌일–도원–유형으로 이어졌고, 제자로는 처명(處明), 호정(鎬政), 만익(萬益) 등이 있다.
불확실·상충하는 정보
- 초명(初名): '봉기(奉琪)'로 기록한 자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등)와 '봉문(奉聞)'으로 기록한 자료(일부 불교 관련 사이트)가 있어 상충한다.
- 출가·수계 관련 인물: 은사(쾌일)는 대체로 일치하나, 계사(戒師)를 '도암(道巖)'으로 보는 기록과 '도원(道圓)'·'침명(枕溟)'·'백암도원' 등으로 달리 적은 기록이 혼재한다.
- 본관 및 가계: 완산이씨(完山李氏)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나, 일부 비문 계열 자료는 선원이씨(璿源李裔, 전주 이씨)로 전하기도 한다.
- 입적 연도·장소: 대부분 1889년(고종 26)으로 보지만 일부 자료는 1890년으로 적기도 하며, 입적 장소를 '구암사'로 기록한 자료와 '봉인사(양주 천마산)'로 기록한 자료가 있어 차이가 있다.
- 이상의 상충 항목은 사료 간 차이로, 단일한 정설이 확립되지 않았다.
평가 및 의의 유형은 19세기 조선 불교계에서 백파 긍선의 선교관(禪敎觀)을 계승·변호한 마지막 세대의 논객으로 평가되며, 『선원소류』는 백파–의순 논쟁의 후속 국면을 보여주는 문헌으로 한국 근대 불교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주요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형」, 「선원소류」
- 위키백과 「유형 (승려)」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관련 항목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1918)
- 김호귀, 「『선원소류』에 나타난 선리논쟁의 고찰」(202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