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주(兪鶴柱, 생몰년 미상)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관료이자 친일 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주요 인물이다. 한자 표기는 문헌에 따라 兪鶴柱와 柳鶴周가 혼용되어 나타난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 법부주사(法部主事)로 재직하였으며, 초기에는 개화파로서 독립협회에 참여하였다가 1898년 고종에 의해 체포된 이력이 있다. 1904년 8월, 송병준의 주도로 윤시병, 염중모 등 전 독립협회 계열 인사들이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고, 이틀 후 회명을 일진회로 개칭할 때 유학주는 부회장을 맡았다. 이후 일진회 내에서 총무원, 삼파연합정견협정위원, 평의장(1910년) 등을 역임하며 한일 병합을 주장하는 합방청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평리원(平理院)의 판사로 임명되어, 일본 통감부의 감독 아래 항일 의병 관련 재판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자위단원호회(自衛團援護會) 제5부 위원장으로서 의병 탄압을 목적으로 한 자위단 설립을 선전하고 독려하는 활동을 벌였다. 1908년에는 러일전쟁 협력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 서보장(瑞寶章)을 수여받았다.
한일 병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 체제에 협력하였다. 1934년 흑룡회가 한일 병합 공로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일한합방기념탑에 이용구, 송병준 등과 함께 이름이 기록되었다.
사후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단체 부문)에 포함되었다.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으며, 1850년대생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으나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