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유창 (조경왕)

조경왕 유창(趙頃王 劉昌, ? ~ 기원전 74년)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황족이자 제후왕으로, 조왕(趙王)이었다. 전한 경제(景帝)의 손자이며, 조경숙왕(趙敬肅王) 유팽조(劉彭祖)의 아들이다.

생애

유창은 제후왕의 아들로서 원삭(元朔) 3년(기원전 126년) 4월 갑진일에 무시후(武始侯)로 봉해졌다. 그의 아버지 조경숙왕은 간음으로 무제(武帝)에게 폐위된 태자 단(丹)을 다시 세우려고 시도했으나 무제의 허락을 얻지 못한 채 경숙왕 63년(기원전 93년)에 사망했다.

경숙왕이 생전에 총애하던 첩 요희(妖姬)에게서 아들 요자(廖子)가 있었고, 죽거나 봉국을 잃지 않은 경숙왕의 아들들 가운데 무시후 유창의 서열이 가장 높았다. 요희의 오라버니는 무제의 환관으로 있었는데, 무제가 그를 불러 요자의 인품을 물었다. 요희의 오라버니는 요자는 욕심이 많다고 답했고, 무제는 그러한 인물은 왕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무제가 무시후 유창의 인품을 묻자, 요희의 오라버니는 뛰어난 점도 모자라는 점도 없다고 답했다. 무제는 "그러면 족하다"라고 하고, 무시후 유창을 조경숙왕의 후사로 세웠다.

유창은 조왕으로 즉위한 뒤 재위 19년 만인 기원전 74년에 사망했다. 그의 치세 동안 별도의 왕자후(王子侯)가 새로 봉해지지 않았으며, 아버지 경숙왕 대에 24개 후국으로 분할된 조나라는 경왕 생전에는 더 이상 분할되지 않았다. 사후에는 아들 회왕(懷王) 유존(劉尊)이 왕위를 계승했다.

가계

  • 아버지: 조경숙왕 유팽조
  • 아들: 조회왕 유존

그의 아들들 가운데 한구절후(邯溝節侯), 악양무후(樂陽武侯), 상중대후(上中戴侯), 장후(張侯)는 지절(地節) 2년(기원전 68년) 4월 계묘일에 봉해졌으며, 도향효후(桃鄕孝侯)는 감로(甘露) 2년(기원전 52년) 7월 신미일에 봉해졌다.

사료

이 인물에 대한 기록은 반고(班固)가 저술한 《한서》(漢書) 권14 제후왕표, 권15 왕자후표, 권53 경십삼왕전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경십삼왕전에는 그의 즉위 과정과 생애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