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흥(劉載興, 1921년 8월 3일 ~ 2011년 1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겸 외교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제19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생애 및 경력
유재흥은 1921년 8월 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충청남도 공주이다. 신의주중학교를 거쳐 일본육군사관학교(55기)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일본군 근위보병 제3연대 소위를 시작으로 1943년에는 메이지대학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서 조선인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해방 직전 일본군 제206사단 중박격포연대 제2대대장을 지내다가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이수하고 국방경비대 정위(현 대위)로 임관하였다. 통위부 군수국장, 제6여단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주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제7사단장, 제2군단장을 맡아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제3군단장을 역임하였다. 1951년 강원도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작전에 실패하여 많은 사상자와 포로를 발생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육군 참모차장, 연합참모본부총장, 제1군사령관 등을 지내고 1960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외교 및 정치 활동
예편 후 주태국대사(1960~1963), 주스웨덴대사(1963~1967), 주이탈리아대사(1967~1971)를 역임하였다. 이후 제19대 국방부 장관(1971년 8월 ~ 1973년 12월)을 지냈으며, 대한석유공사 사장과 성우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술 및 상훈
저서로 회고록 『격동의 세월: 유재흥 회고록』(을유문화사, 1994)이 있다. 상훈으로는 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훈장( Legion of Merit, 2회 수훈), 수교훈장, 비행훈장, 그리스 페닉스 대훈장, 벨기에 최고훈장, 페루십자무공훈장 등이 있다.
사망
2011년 11월 26일 서울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