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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 (사람)

유예(劉豫, 1073년~1146년)는 중국 북송 말기에서 남송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송나라의 관리이자 금나라가 세운 괴뢰 정권인 제(齊)나라의 유일한 황제이다. 자는 언유(彦遊)이다.

생애 초기

유예는 1073년 북송 영정군 부성현(現 중국 허베이성 헝수이시 푸청현)에서 태어났다. 1100년(송 휘종 즉위년)에 진사가 되었으며, 송 휘종 선화 연간(1119~1125)에는 국자감에 있다가 하북제형(河北提刑)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금나라가 남침하자(정강의 변) 관직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이후 남송 고종 때 신하로 복귀하여 장각(張慤)의 추천을 받아 제남지부(濟南知府)에 임명되었다.

금나라 투항과 제나라 황제 즉위

금나라가 다시 송을 침략하자, 유예는 제남을 지키던 중 금의 책략에 휘둘려 수세에 몰렸다. 그는 금에 항전하던 장수 관승(關勝)을 죽이고 금나라에 항복하여 1129년 동평지부(東平知府)에 봉해졌다. 이듬해인 1130년, 금나라로부터 제(齊)나라의 황제로 책봉되어 황하 이남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고, 대명(大名)을 수도로 삼았다. 제나라는 금나라에 의해 세워진 괴뢰 정권으로, 정식 황제로 인정되지 않는다.

제나라 통치와 몰락

유예는 제나라 황제로 즉위한 후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행태를 보였으며, 북송 황제들의 능을 파헤치는 등 만행을 저질러 남송 군민과 제나라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또한 금나라 군대를 이용해 송을 공격하기도 하였으나, 악비(岳飛)와 한세충(韓世忠) 등에게 패배하였다. 결국 금나라 내부에서 유예 정권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던 중, 1137년(부창 8년) 그의 후원자였던 점몰갈이 실각하면서 제나라는 건국 8년 만에 폐지되었다.

말년

유예는 황제에서 폐위된 후 촉왕(蜀王)으로 강등되었다가, 그 일가가 임황(臨潢, 현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 바린우기)으로 강제 이주된 뒤에는 조왕(曹王)으로 개봉되었다. 이후 1146년 10월 18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평가

유예는 금나라에 투항하여 괴뢰 정권의 황제가 된 인물로, 중국 역사에서 배신자 또는 반역자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송사》에서는 '반신(叛臣)'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다만 일부 자료에서는 그가 제나라를 통치하는 동안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추구한 측면이 있었다는 평가도 존재하나, 이에 대한 상세한 검증은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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