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劉永, ? ~ ?)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황족으로,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의 아들이자 후주(後主) 유선(劉禪)의 이복동생이다. 자는 공수(公壽)이며, 어머니의 출신과 성씨는 사료에 명확히 기록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유비가 221년(장무 원년) 황제에 즉위하자, 유영은 그해 6월 노왕(魯王)에 봉해졌다. 223년 유비가 백제성(白帝城)의 영안궁(永安宮)에서 임종할 때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230년(건흥 8년), 촉한과 동오(東吳)가 조위(曹魏)를 정벌한 이후의 영토 분배를 약정하면서 노(魯) 땅이 동오의 영토로 정해지자, 유영은 촉한 영토인 기주(冀州)에 위치한 감릉(甘陵)으로 옮겨져 감릉왕(甘陵王)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유영은 환관 황호(黃皓)를 심하게 꺼렸는데, 황호는 유선의 신임을 얻어 정권을 장악한 뒤 유영을 참소(讒訴)하였다. 이로 인해 유영은 형 유선을 십여 년간 알현하지 못하였다. 263년(염흥 원년) 촉한이 조위에 의해 멸망한 뒤, 이듬해인 264년(함희 원년) 유영은 위(魏)의 수도 낙양(洛陽)으로 이주하여 봉거도위(奉車都尉)에 임명되고 향후(鄉侯)에 봉해졌다. 이후의 행적은 사료에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유영의 가족 관계로는 형 유선, 이복동생 안평왕(安平王) 유리(劉理)가 있으며, 아들로는 유신(劉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 기록은 《삼국지》 촉서(蜀書)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등에 근거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영은 유비의 둘째 아들로 등장하나, 역사상 실제 활약상은 극히 제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