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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솝 빈 이스학

유솝 빈 이스학(말레이어: Yusof bin Ishak, 1910년 8월 12일 ~ 1970년 11월 23일)은 싱가포르의 언론인, 공무원, 정치인으로,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싱가포르의 양 디페르투안 느가라(Yang di-Pertuan Negara, 국가원수)를, 1965년부터 1970년 사망할 때까지 싱가포르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다.

생애 초기와 가계

유솝 빈 이스학은 1910년 8월 12일, 당시 말레이 연방주(Federated Malay States)의 일부였던 페락(Perak)주 파당 가자(Padang Gajah)에서 이샤크 빈 아흐마드와 아이샤 툰 하지 아미누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홉 형제 중 장남이었으며, 아버지는 미낭카바우(Minangkabau) 혈통, 어머니는 수마트라 랑카트(Langkat) 출신의 말레이 혈통이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수산청장 대리를 지낸 바 있다.

교육과 언론 경력

유솝은 페락 타이핑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뒤, 1924년 싱가포르의 명문 학교인 래플스 인스티튜션(Raffles Institution)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하였다. 1932년과 1933년에는 전국 역도 챔피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유솝은 언론계에 투신하여, 1932년 말레이어 일간지 《와르타 말라야》(Warta Malaya)에 입사하였다. 1939년에는 말레이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을 창간하고자 다른 말레이 지식인들과 함께 《우투산 멜라유》(Utusan Melayu)를 공동 창립하여 초대 사장 겸 경영 책임자를 맡았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이 신문의 경영을 주도하며, 1958년에는 말레이어 신문 사상 최대 규모인 일간 발행량 약 3만 부를 기록하게 하였다. 유솝은 1959년, 신문의 정치적 방향을 둘러싸고 UMNO(통일말레이국민조직)와 갈등을 겪은 끝에 사임하였다.

정치 경력

1959년 총선에서 인민행동당(PAP)이 승리한 후, 리콴유 총리는 유솝을 공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으로 초빙하였다. 같은 해 12월 3일, 유솝은 윌리엄 구드 경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의 양 디페르투안 느가라로 취임하여 140년간의 식민 통치 이후 최초의 원주민 국가원수가 되었다.

1963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 합병된 후에도 그는 국가원수직을 유지하였다.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유솝은 싱가포르의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1967년 싱가포르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의회의 만장일치로 재선되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유솝은 재임 기간 동안 다인종 사회의 통합과 교육 진흥을 강조하였다. 그는 1963년 메카 순례(하지)를 수행하여 알하지(Al-Haj)라는 칭호를 얻었다.

사망

유솝은 1968년 호주 방문 중 심장마비를 겪은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1970년 11월 23일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크란지 국립묘지(Kranji State Cemetery)에 안장되었으며, 이는 해당 묘지의 첫 안장 사례였다. 사망 후 벤저민 시어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유산

유솝의 이름을 딴 여러 기관이 싱가포르에 존재한다. 1966년 개교한 유솝 이스학 중등학교,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켄트리지 캠퍼스의 유솝 이스학 하우스, 2015년 동남아연구소(ISEAS)가 개명된 ISEAS-유솝 이스학 연구소, 그리고 우드랜드 소재의 마스지드 유솝 이스학(모스크)이 대표적이다. 또한 1999년 발행된 싱가포르 달러 지폐 '초상화 시리즈'(Portrait Series)에는 유솝의 초상이 도안되어 있으며, 2015년 싱가포르 독립 50주년 기념 지폐에도 그가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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