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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십국)

유성(劉晟, 920년 ~ 958년 9월 18일)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남한(南漢) 제3대 황제이다. 초명은 유홍희(劉弘熙)이며, 묘호는 중종(中宗), 시호는 문무광성명효황제(文武光聖明孝皇帝)이다. 재위 기간은 943년부터 958년까지이다.

생애

920년, 남한의 초대 황제인 고조(高祖) 유엄(劉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942년 아버지 유엄이 사망하고 형 유분(劉玢)이 제2대 황제(상제, 殤帝)로 즉위하였으나, 유분이 음탕하고 잔학한 행위를 일삼아 민심을 잃었다. 943년, 유성은 동생들과 함께 모의하여 형 유분을 살해하고 황위를 찬탈하여 제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즉위 직후 연호를 응건(應乾)으로 정하였고, 같은 해 겨울 남교(南郊)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다시 연호를 건화(乾和)로 개원하였다. 이때 신하들은 그에게 '대성문무대명지효대광효황제(大聖文武大明至道大光孝皇帝)'라는 존호를 올렸다.

유성은 성격이 거칠고 잔혹하였다고 전해진다. 즉위 후 황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신들과 자신의 형제들을 대거 숙청하였으며, 수년에 걸쳐 종친 일족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폭정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잔혹한 군주로 평가된다. 한편 북쪽 초(楚)나라의 내란을 틈타 출병하여 영토를 확장하기도 하였다.

958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39세. 그의 뒤는 장남 유창(劉鋹, 유계흥)이 이어받아 제4대 황제(후주, 後主)가 되었다.

가족 관계

후비로는 여희(麗姬) 이씨(李氏)와 섬비(蟾妃) 이씨(李氏)가 있었다. 황자로는 장남 유창(위왕, 후에 제4대 황제)을 비롯하여 유선흥(계왕), 유경흥(형왕), 유보흥(정왕), 유숭흥(매왕)이 있었다.

참고 문헌

  • 《구오대사》 권135, 참위열전, 유성전
  • 《신오대사》 권65, 남한세가,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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