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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규

유상규(劉相奎, 1897년 11월 10일 ~ 1936년 7월 18일)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외과의사이다. 호는 태허(太虛)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생애

유상규는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서부동에서 태어났다. 경신중학교를 1916년 3월 제11회로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새로 설립된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에 제1회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을 동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학업을 1년 앞둔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임시정부 교통국에 근무하였고, 임정 조사원 강계지역 책임자로서 독립운동 자료 조사 및 수집 활동을 하였다. 1919년 5월에는 임시정부 내무총장을 지낸 안창호의 비서관이 되었으며, 그 시기에 흥사단에 입단하여 흥사단 원동지부에 속하였다.

안창호의 권고로 1923년 6월 상하이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서 노동을 체험하였다. 6개월간 토목현장 막노동자와 비누 공장 노동자로 지내다가, 1924년 귀국하려 할 때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된 후 일본에서 강제 추방되어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25년 경성의학전문학교 3학년으로 복학하여 1927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외과의사 및 경성의전 강사로 근무하면서 후배 양성과 환자 치료에 전념하였다. 1930년 조선의사협회와 조선위생협회 창설을 주도하고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대중 보건위생 계몽에도 힘썼다. 동우회 활동을 통해서도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유상규는 환자를 치료하던 중 단독(丹毒)에 감염되어 1936년 7월 18일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 강사로 근무 중 순직하였다. 그의 장례는 당시 대전에서 출옥하여 국내에 체류하던 안창호가 주관하여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정에서 치러졌다. 유상규는 서울 망우리공원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안창호는 사후 자신의 묘를 유상규 묘 옆에 조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서훈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6월 1일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

의학 업적

유상규는 충양돌기염 수술 후 혈전성정맥염, 자외선조사혈액 재주사의 혈액신생촉진작용, S자장 원발성암, 사독(蛇毒) 면역, X선의 약리학적 작용 등에 관한 의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약리학적 입장에서 관찰한 Rentogen선 작용에 관한 일고찰"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가족

부인은 이애신(李愛信)이며, 아들로 유공섭, 유옹섭, 유종섭이 있다.

참고 문헌

  • 《태허 유상규: 도산 안창호의 길을 간 외과의사》, 유옹섭·유송민·유영삼, 더북스, 2011
  • 《애국지사 태허 유상규: 유고와 전기》, 유상규·유옹섭, 흥사단출판부, 2007
  • "식민시대 지식인, 유상규의 삶의 궤적", 대한의사학회, 《의사학》 제18권 제2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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