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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증 초상

유백증 초상(兪伯曾 肖像)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유백증(1587~1646)의 초상화로,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에 있는 충경사(忠景祠)에 봉안되어 있으며, 1995년 6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세로 174㎝, 가로 95㎝의 비단 바탕에 채색된 전신좌상이다.

유백증의 인물 정보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21년 병조좌랑이 되었다. 그러나 이이첨 등 권신들에게 아부하지 않아 한직에 머물렀으며,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해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 3등으로 기평군(杞平君)에 봉해졌고, 이후 대사간과 이조참판을 지냈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경공'(忠景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작품의 특징

초상화에는 단령(團領)과 사모관대를 정장한 인물이 바닥에 채전(彩氈)을 깔고 교의자에 반우향(半右向)으로 앉아 공수(拱手)한 자세로 그려져 있다. 이는 조선 중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도상이다. 흉배에는 적색 번개무늬 바탕 위에 구름을 배경으로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운한(雲鷳) 흉배가 표현되었고, 관대는 삽금대(鈒金帶)로 금분과 은분을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강조했다.

단령의 옷주름은 짙고 강한 먹선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하였고, 신체를 평면적으로 처리한 점, 사모의 날개 내부 문양을 생략한 소략한 표현 등이 특징적이다. 얼굴은 붉은색 필선으로 윤곽선과 주름을 잡고 붉은 빛이 도는 살색을 담채하였으며, 요철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관념적 음영법이 사용되었다. 눈과 수염 등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작 시기

초상화 속 인물이 얼굴에 주름과 흰 수염이 없는 젊은 용모이며, 도상과 화법이 17세기 초 공신도상의 전형과 유사한 점이 있어, 37세인 1623년에 정사공신에 녹훈된 뒤 그려진 공신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사공신 녹권(錄券)이 1625년(인조 3) 공신도감에서 발급된 사실로 보아, 공신으로 책록된 즈음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소장 현황

현재 조선식 족자 표구 형태로 전해지며, 정사공신 녹권이 원형대로 보존된 채 함께 소장되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의 부조묘 충경사에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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