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룡(庾東龍, 1937~2011)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이다. 일본에서는 예명인 이타미 준(伊丹潤, Jun Itami)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관은 무송 유씨이며, 경상남도 거창군이 본적지이다.
생애
유동룡은 1937년 5월 12일 일본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 아래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성장하였으며,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하였으며, 일본에서 외국인으로서 정기적인 지문 날인 등의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귀화하지 않았다.
무사시 공업대학(현 도쿄도시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1968년 건축설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대학 시절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한국의 전통 건축, 민화, 달항아리 등에 깊이 매료되어 전국을 답사하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조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 『한국의 공간』(1985)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예명의 유래
그의 한국 성씨 '유(庾)'는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 한자였기 때문에 출판과 건축 발표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吉屋潤)의 예명에서 '준(潤)'을, 생애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 이용한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와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만들었다. 이 이름에는 국적과 경계를 넘어 세계인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건축 철학과 주요 작품
유동룡은 건축이 세워지는 장소의 풍토와 지역성,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건축을 추구하였다. 자연의 물성을 살리고 빛과 바람, 돌, 물, 흙 등 자연 요소를 건축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이 특징이다. 그는 '무거운 건축'을 지향하며 원시적인 재료의 야성미와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는 공간을 중요시하였다.
국내 주요 작품으로는 충남 아산의 온양미술관(1982, 현 구정아트센터), 제주도의 포도호텔(2001), 수·풍·석 미술관(2006), 방주교회(2009) 등이 있다. 특히 제주도는 그의 후반기 건축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제주의 오름과 민가에서 영감을 받은 포도호텔, 바람과 물을 소재로 한 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학고재 화랑(현 인사동 갤러리 이즈), 도쿄 M빌딩, 경주타워(원 디자인) 등의 작품이 있다.
수상 경력
2003년 아시아인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4년 베를린 아에데스 갤러리 전시,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및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 2006년 김수근 문화상,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였다.
경주타워 저작권 분쟁
2004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에 출품한 유동룡의 디자인이 우수작(2위)으로 선정되었으나, 2007년 완공된 경주타워가 그의 설계안과 매우 유사하게 건축되면서 법정 분쟁이 발생하였다. 2011년 대법원에서 유동룡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확정되었으나, 그는 판결 한 달 전인 2011년 6월 26일 도쿄에서 향년 74세로 사망하여 명예 회복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2020년 경북도와 문화엑스포가 그의 원 디자인 저작권을 인정하고 대형 현판을 설치하면서 12년간의 법적 공방이 종결되었다.
사후
2019년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정다운 감독)가 개봉하였다. 2022년 12월 제주시 저지예술인마을에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가 설계한 유동룡미술관(이타미 준 뮤지엄)이 개관하였다. 유동룡의 건축 철학과 작품 세계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지속적으로 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