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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휴얼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년 5월 24일 ~ 1866년 3월 6일)은 19세기 잉글랜드의 박식가이자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과학사가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과 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후 같은 대학에서 광물학 교수(1828~1832), 철학 교수(1838~1855)를 역임하고 1841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Master)으로 재직하였다.

휴얼은 역학, 물리학, 지질학, 천문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으며, 조석(潮汐)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여 해양 조석을 관측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는데, 이는 오늘날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 공로로 1837년 왕립학회(Royal Society)로부터 왕립 메달(Royal Medal)을 수여받았다. 수학 분야에서는 좌표계에 의존하지 않고 곡선의 형태를 정의하는 '휴얼 방정식(Whewell equation)'을 도입하였다.

휴얼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는 과학 용어의 창안이다. 그는 'scientist'(과학자, 1833), 'physicist'(물리학자, 1840), 'linguistics'(언어학), 'consilience'(합치), 'catastrophism'(격변설), 'uniformitarianism'(동일과정설), 'astigmatism'(난시) 등의 용어를 만들었다. 또한 마이클 패러데이에게 'electrode'(전극), 'ion'(이온), 'dielectric'(유전체), 'anode'(양극), 'cathode'(음극) 등의 용어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철학 분야에서 휴얼은 귀납(induction)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 저작으로는 《귀납과학의 역사》(History of the Inductive Sciences, 1837)와 《귀납과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the Inductive Sciences, 1840)이 있다. 그는 귀납적 추리를 세 단계로 분석했으며, '합치(consilience)'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하여 서로 다른 학문 분야 간 지식의 통합을 논의하였다. 칸트의 철학을 따라 존 스튜어트 밀의 경험주의적 귀납론에 반대하며 필연적 진리의 선험적 성격을 주장하였다.

휴얼은 또한 고딕 건축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 《독일 교회에 관한 건축적 주석》(Architectural Notes on German Churches, 1830)을 저술했으며, 트리니티 칼리지에 고딕 양식의 건물 두 동을 직접 자비로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 서문에 인용된 브릿지워터 논문(Bridgewater Treatise)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진화론 자체에는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

휴얼은 1866년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으며, 트리니티 칼리지 예배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국제법 휴얼 교수직(Whewell Professorship of International Law)과 휴얼 장학금(Whewell Scholarships)이 설립되었다. 달의 '휴얼 분화구', 광물 '휴얼라이트(whewellite)', 트리니티 칼리지의 '휴얼 코트(Whewell's Court)' 등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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