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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테쿰세 셔먼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년 2월 8일 ~ 1891년 2월 14일)은 미국의 군인, 기업가, 교육자, 저술가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연방군) 장성으로 활약했으며, 전쟁 후 미국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생애 초기 및 군 경력 시작 오하이오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으며, 부친 사망 후 이웃이자 정치적 후원자인 토머스 유잉(Thomas Ewing) 상원의원의 양자로 자랐다. 1840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미놀 전쟁과 멕시코-미국 전쟁에는 주로 행정 장교로 복무했다. 1853년 대위로 진급했으나 군 생활에 환멸을 느껴 제대하고 은행가, 변호사, 루이지애나 주립 세미나리(현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교장 등으로 활동했다.

남북전쟁 당시 활약 1861년 남북전쟁 발발 후 육군에 복직하여 제1차 불런 전투(제1차 매너서스 전투)에서 여단을 지휘했다. 이후 우울증과 신경 쇠약으로 잠시 전선에서 물러났으나,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의 신임을 얻어 1862년 셔먼 전투(샤일로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소장으로 진급했다.

1863년 빅스버그 포위전과 채터누가 전투에서 그랜트를 보좌했으며, 1864년 그랜트가 동부 전선 총사령관으로 이동하자 서부 전선 연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애틀랜타 전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1864년 9월 애틀랜타를 점령, 링컨 대통령의 재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바다로의 진군(March to the Sea)'을 감행,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서배너까지 약 400마일을 진격하며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산업 기반, 철도, 농장 등)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전면전(Total War)' 전략을 실행했다. 1865년 캐롤라이나 전역을 통해 북상, 노스캐롤라이나주 베넷 플레이스에서 남군 조셉 E. 존스턴 장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전후 경력 및 말년 1869년 그랜트 대통령 취임 후 육군 대장(General of the Army)으로 승진하여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인디언 전쟁 수행 정책을 감독하고, 대륙 횡단 철도 건설 보호 임무 등을 수행했다. 1884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후보로 지명되지 않겠으며, 선출되더라도 취임하지 않겠다"는 유명한 '셔먼 서약(Sherman Pledge)'을 발표하며 정계 진출을 거부했다.

1884년 회고록 《윌리엄 T. 셔먼 회고록(Memoirs of General William T. Sherman)》을 출간했으며, 1891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칼버리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가 및 유산 셔먼은 현대전의 개념을 정립한 군사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적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적·심리적 기반을 타격하는 '전면전' 개념을 실전에 적용해 남부의 항복 의지를 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쟁은 지옥이다(War is hell)"라는 발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그랜트 장군과 더불어 북부 승리의 양대 기둥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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