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왕의 전쟁(King William's War)은 1688년부터 1697년까지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유럽에서 진행된 9년 전쟁(대동맹 전쟁 또는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의 북아메리카 전선에 해당한다. 영국 왕 윌리엄 3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제2차 인디언 전쟁, 보두앵 신부의 전쟁, 캐스틴의 전쟁, 또는 프랑스어로 제1차 식민지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17세기 말,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누벨프랑스(프랑스 식민지)와 뉴잉글랜드(영국 식민지)가 영토와 무역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었다. 영국 정착민은 약 15만 4천 명 이상으로 프랑스인(약 1만 4천 명)보다 12대 1로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여러 식민지로 분할되어 효율적으로 협력하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더 단결되어 있었고 원주민 부족들과 동맹을 맺어 전력을 보강했다.
1688년 영국에서 명예 혁명이 발생하여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 2세가 폐위되고 개신교도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즉위했다. 윌리엄 3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대항하는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에 합류하였고, 이에 따라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도 양국 간의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경과
전쟁은 크게 세 전선에서 전개되었다.
뉴잉글랜드-아카디아 전선에서는 프랑스와 와바나키 연맹(원주민 부족 연합)이 영국 정착촌을 습격하고, 이에 영국이 보복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1690년 윌리엄 핍스 경이 이끄는 영국군이 아카디아의 수도 포트 로얄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이후 프랑스군이 재반격하여 피마퀴드 공성전(1696년)과 애벌론반도 작전에서 영국 정착지를 파괴했다.
퀘벡-뉴욕 전선에서는 1690년 영국군이 몬트리올과 퀘벡을 동시에 공격하는 작전을 시도했으나, 보급 문제와 질병, 그리고 퀘벡 전투에서의 패배로 실패했다. 이로쿼이 연맹은 영국 측 동맹으로 참전했으나 프랑스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허드슨만 전선에서는 허드슨 베이 회사의 무역 기지를 두고 프랑스와 영국이 충돌했다. 피에르 르 모인느 디베르빌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여러 차례 습격을 감행하여 무스 팩토리, 요크 팩토리 등을 점령했다.
결과
1697년 체결된 레이스베이크 조약으로 전쟁은 종결되었고, 식민지 국경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환원되었다.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북아메리카에서 벌인 여섯 차례의 식민지 전쟁 중 첫 번째에 해당하며, 이후 앤 여왕의 전쟁(1702~1713), 조지 왕의 전쟁(1744~1748),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4~1763) 등으로 이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윌리엄 왕의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인디언에 대한 두려움이 1692년 세일럼 마녀 재판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