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오트레드(William Oughtred, 1574년 3월 5일 ~ 1660년 6월 30일)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성공회 성직자이다. 이름은 Owtred, Uhtred 등으로도 표기된다.
생애
오트레드는 잉글랜드 버킹엄셔의 이튼(Eto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벤저민 오트레드는 이튼 칼리지에서 필사술(writing-master)을 가르쳤으며, 윌리엄은 이튼 칼리지에서 초기 교육을 받았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진학하여 1596년/1597년에 학사 학위, 1600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595년부터 1603년까지 동 대학에서 펠로로 재직했다.
성직에 임명된 후 약 1603년에 케임브리지를 떠나 서리 주 길드퍼드의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교구장(rector)으로 봉직했으며, 1605년에는 샬퍼드(Shalford)의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606년 크리스트-기프트 캐릴(Christs-gift Caryll)과 결혼하여 12명의 자녀를 두었다.
1610년 10월 앨버리(Albury) 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후 50년간 그 직을 유지했다. 그는 왕당파의 지지자였으며, 1660년 찰스 2세의 복위 소식을 듣고 기쁨에 차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앨버리의 올드 세인트 피터 앤 세인트 폴 교회에 안장되었다.
수학적 업적
오트레드는 계산자(slide rule)의 초기 형태를 발명한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존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견하고 에드먼드 건터가 대수 눈금(logarithmic scales)을 창안한 이후, 오트레드는 약 1622년경 두 개의 대수 눈금을 서로 미끄러지게 하여 직접 곱셈과 나눗셈을 수행하는 방식을 최초로 고안했다.
그는 또한 수학 기호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곱셈 기호 '×'를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비례 기호 '::'(더블 콜론), 삼각함수 약어 'sin'과 'cos'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학에서 두 변수 간의 차이를 표현하는 기호 '~'도 사용했다.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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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ae, 1631): 산술과 대수를 다룬 교과서로, 오트레드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초판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으며, 이후 여러 판본으로 재발행되어 존 월리스와 아이작 뉴턴을 포함한 후대 수학자들에게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서 곱셈 기호 ×가 처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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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의 원과 수평 기기》(The Circles of Proportion and the Horizontal Instrument, 1632): 제자 윌리엄 포스터가 편집하여 출판한 저서로, 계산자의 발명과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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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법》(Trigonometria, 1657): 삼각 함수표와 함께 삼각형 변과 각의 계산 방법을 수록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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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소논문집》(Opuscula Mathematica, 1677): 사후에 친구 찰스 스카버러 경이 편집하여 출판한 미발표 수학 논문 모음집이다.
발명품
계산자 외에도 오트레드는 이중 수평 해시계(double horizontal sundial)를 23세 때 발명했으며, 이는 현재 오트레드식 해시계(Oughtred type)로 명명되었다. 또한 보편 주야평환(Universal equinoctial ring dial)을 발명했다.
제자 및 영향
오트레드는 무료로 수학을 가르쳐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의 제자로는 존 월리스, 크리스토퍼 렌, 리처드 딜러메인, 세스 워드, 조너스 무어 등이 있다. 아이작 뉴턴은 1694년 서한에서 오트레드를 "그의 판단력이 의심할 여지없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기타
오트레드는 연금술과 점성술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대의 저명한 점성가 윌리엄 릴리와 교류했다. 1991년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오트레드 협회(Oughtred Society)가 창설되어 계산자 수집과 역사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