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년 7월 31일 ~ 1886년 3월 9일)는 미국의 화학자, 식물학자, 동물학자이자 교육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슈필드에서 태어나 애머스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화학, 식물학, 동물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 제21매사추세츠 의용보병연대에서 대령으로 복무하였으며, 뉴번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다. 전쟁 후 매사추세츠 농업대학(현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의 제3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1867년부터 1879년까지 재임하였으며, 동 대학의 첫 신입생을 받아들이고 교수진을 구성하는 등 실질적인 초대 총장 역할을 수행하였다.
1876년, 일본 메이지 정부의 초청으로 외국인 고문(o-yatoi gaikokujin)으로서 홋카이도 삿포로에 설립된 삿포로 농학교(현 홋카이도 대학)의 초대 교감(敎頭)으로 부임하였다. 약 8개월간 재임하면서 농학, 식물학, 동물학 등 자연 과학 전반을 영어로 가르쳤으며, 미국식 농업 모델과 축산 기술을 도입하고 홋카이도 개척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였다. 또한 기독교 윤리 교육을 실시하여 제1기 학생 전원이 '예수를 믿는 자의 계약'에 서명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877년 4월 16일 삿포로를 떠나며 남긴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은 일본 전역에서 널리 알려진 격언이 되었다. 이 문구의 전체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존재하나, "돈이나 이기적인 성취, 명성이라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야망을 가져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귀국 후 매사추세츠 농업대학 총장직을 사임하고 부유하는 대학(floating college) 구상에 참여하였으나 무산되었고, 이후 광산 회사 클라크 & 보스웰을 설립하였으나 파트너의 횡령으로 회사가 파산하면서 재정적, 사회적 평판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여파로 건강이 악화되어 1886년 3월 9일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미국 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으나,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대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삿포로의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와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 등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의 명언은 일본의 교과서와 대중문화에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와 홋카이도 대학은 자매결연 관계를 맺고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