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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스타젤

윌리 스타젤(Willie Stargell, 본명: 윌버 도넬 스타젤, Wilver Dornell Stargell, 1940년 3월 6일 ~ 2001년 4월 9일)은 미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1962년부터 1982년까지 21시즌 동안 좌익수와 1루수로 활약하며 전 경력을 한 팀에서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경력 후반에는 "팝스(Pops)"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생애 및 배경

스타젤은 1940년 3월 6일 오클라호마주 얼스보로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후 고모를 따라 플로리다주로 이주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로 돌아와 모친과 함께 살았다. 엔시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9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 리그 시절에는 인종 차별로 인해 백인 선수들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지 못하고 흑인 전용 숙소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경기 출전을 위협받기도 했으나 경기를 강행했다.

메이저 리그 경력

스타젤은 1962년 시즌 말기에 22세의 나이로 MLB에 데뷔했다. 1964년부터 본격적인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1964년부터 1966년까지 3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71년에는 타율 .295, 48홈런, 125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에는 44홈런으로 다시 홈런왕에 오르며 내셔널 리그 타점왕(119타점)도 차지했다. 1975년부터는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

1979년, 39세의 나이에 스타젤은 타율 .281, 32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키스 에르난데스와 공동으로 내셔널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포스트시즌에서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와 월드 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하여, 한 시즌에 세 개의 MVP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MLB 선수가 되었다. 1979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포함해 시리즈 3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통산 성적

스타젤의 MLB 통산 성적은 2,360경기 출전, 타율 .282, 2,232안타, 423개의 2루타, 55개의 3루타, 475홈런, 1,540타점, 출루율 .360, 장타율 .529, OPS .889이다. 1970년대 전체를 통틀어 296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

플레이 스타일 및 기록

스타젤은 당대 최고의 파워 히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191cm, 102kg의 체구에서 나오는 장거리 홈런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피츠버그의 옛 홈구장인 포브스 필드는 중앙 펜스까지 135m에 달하는 대형 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젤은 이 구장에서만 7개의 장외 홈런을 기록했다. 1969년 8월 5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507피트(약 155m)로 측정된 장외 홈런을 포함해, 당시 내셔널 리그 구장들의 최장거리 홈런 기록 중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상 및 영예

스타젤은 7회 올스타(1964~1966, 1971~1973, 1978), 2회 내셔널 리그 홈런왕(1971, 1973), 1회 내셔널 리그 타점왕(1973), 2회 월드 시리즈 우승(1971, 1979), 1979년 내셔널 리그 MVP, 1979년 월드 시리즈 MVP, 1979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1974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다. 1982년 9월 6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그의 등번호 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1988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첫 투표로 헌액되었다(득표율 82.4%).

은퇴 이후

은퇴 후 스타젤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코치로 활동했다. 1997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총지배인 보좌 및 특별 야구 조언자로 복귀했다. 만성 신장 질환으로 고통받던 중, 2001년 4월 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61세였다. 그의 사망 이틀 전인 4월 7일, 피츠버그의 새 홈구장 PNC 파크에서 그의 동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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