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예(韋叡, 442년 ~ 520년)는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南齊)와 양(梁)나라의 대신이자 장수이다. 경조군(京兆郡) 두릉현(杜陵縣) 출신이며, 자(字)는 회문(懷文), 시호는 엄(嚴), 작위는 영창현후(永昌縣侯)이다.
위예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명장으로, 특히 종리 전투(鐘離戰鬪)에서 북위(北魏)의 대군을 격파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북위의 대군이 남조를 정벌하기 위해 쳐들어왔을 때, 위예는 양대안(楊大眼) 등 북위의 명장들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본래 몸이 허약하여 말을 타지 못하고 전장에 나아갈 때는 가마를 타고 진두지휘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아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키웠으며, 사병(私兵)이 죽으면 그 유족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어 그가 죽었을 때 남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청렴하고 인품 있는 행적으로 인해 당대에 존경을 받았다.
합비(合肥)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으며, 비수(肥水)를 막아 수공(水攻)을 펼치는 등 전략적 능력도 뛰어났다. 그의 활약으로 양나라는 북위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