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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들 윌키

웬들 루이스 윌키(Wendell Lewis Willkie, 1892년 2월 18일 ~ 1944년 10월 8일)는 미국의 변호사, 기업 경영자이자 정치인이다.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맞섰으나 낙선하였다.

생애 초기

윌키는 인디애나주 엘우드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변호사였으며, 그의 모친은 인디애나주에서 법률 업무를 수행한 최초의 여성 변호사 중 한 명이었다. 조부모는 독일에서 이주하였으며 1848년 혁명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이었다. 윌키는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을 졸업하고 인디애나 로스쿨에서 높은 성적으로 법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육군에 자원입대하였으나 프랑스에 도착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여서 실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기업 경력

전역 후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이후 전력 회사인 코먼웰스 앤드 서던 코퍼레이션(C&S)의 법률 고문으로 합류하여 1933년 사장이 되었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TVA)를 설립하자, TVA가 민간 전력 회사와 경쟁하는 것에 반대하며 법적·정치적 투쟁을 벌였다. 1939년 C&S의 자산을 TVA에 매각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1940년 대통령 선거

윌키는 오랫동안 민주당원이었으나 1939년 공화당으로 전향하였다. 1940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위기 속에서 연합국 지원을 주장하는 개입주의적 입장이 주목받아 다크호스로 전당 대회의 후보 지명을 받았다. 러닝메이트로 찰스 L. 맥너리를 선택하였다. 본선에서 루스벨트에게 유권자 투표 44.8%를 얻으며 패배하였으나, 2,234만 표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서는 기록적인 득표수였다.

전시 활동과 외교

선거 패배 후에도 윌키는 중요한 공인으로 활동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특사 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윈스턴 처칠 총리를 만났고, 임대 프로그램(Lend-Lease) 통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2년에는 중동, 소련, 중국을 방문하여 이오시프 스탈린, 장제스 등과 회담하였다. 이 여행을 바탕으로 저서 《하나의 세상》(One World, 1943)을 출간하였으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후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민권 활동

윌키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 전당 대회에서 연설하고 군대의 인종 통합을 촉구하였으며, 1943년 디트로이트 인종 폭동 이후 양당의 인종 문제 방치를 비판하였다. 또한 미국 대법원에서 공산당 서기 윌리엄 슈나이더만의 시민권을 변호하는 사건을 맡아 승소하였다.

1944년 선거와 사망

1944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였으나 위스콘신주 예비 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에게 패한 후 캠페인을 중단하였다. 같은 해 10월 8일, 여러 차례의 심근 경색으로 뉴욕에서 5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인디애나주 러시빌의 이스트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산

윌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연합국 지원과 전후 국제주의 외교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역사가 월터 리프먼은 윌키의 후보 지명이 영국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고 평가하였으며, 찰스 피터스는 "실제로 대통령직을 보유했던 대부분의 남성들보다 더 큰 영향을 미국과 세계에 끼쳤다"고 썼다. 인디애나 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숙사 건물이 있으며, 미국 우정청은 1992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를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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