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퍼티그(Wendell Fertig, 1900년 12월 16일 ~ 1975년 3월 24일)는 미국의 토목공학자이자 미국 육군 예비역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점령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미국-필리핀 연합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고 지휘한 인물이다.
생애 초기
웬델 웰비 퍼티그(Wendell Welby Fertig)는 미국 콜로라도주 라준타(La Junta)에서 태어났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와 콜로라도 광업학교(Colorado School of Mines)에서 수학했으며, 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1928년 미국 육군 공병대 예비역 소위로 임관했으며, 이후 민간인으로서 광업 및 토목공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1936년 가족과 함께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전쟁 발발 전까지 성공적인 토목공학자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1941년 6월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면서 예비역 장교였던 퍼티그는 현역으로 소집되었다. 바탄(Bataan)과 코레히도르(Corregidor) 전투에 참전했으며, 1942년 4월 민다나오 섬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미군의 필리핀 주둔군이 일본군에 항복했을 때, 퍼티그는 항복을 거부하고 민다나오 섬의 정글에 잔류하여 게릴라 저항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퍼티그는 자신을 준장으로 승진시켜(자가 승진) 민다나오 섬의 각종 게릴라 부대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미국 필리핀군(USFIP, United States Forces in the Philippines)' 제10군관구 사령부로 조직화했다. 그의 부대는 최대 약 32,000명에서 36,000명 규모로 추산되었으며, 이 중 약 16,500명이 무장 병력이었다. 퍼티그의 게릴라 부대는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과 연안 감시(coast watching) 활동을 수행했다.
1943년 1월 퍼티그의 부대는 수제 무선기를 이용해 미국 본토와 통신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매카아더 장군의 사령부는 잠수함을 통해 퍼티그 부대에 보급품을 지원했다. 같은 해 8월 퍼티그는 정식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미국 육군 공로 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받았다.
전후 활동
전쟁이 끝난 후 퍼티그는 민간 공학 경력으로 복귀했으나 예비역 장교 직위를 유지했다. 콜로라도 광업학교에서 ROTC(예비역 장교훈련단) 지휘관으로 4년간 근무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심리전 부대에서 복무했다. 이 시기에 그는 미국 육군 특수부대(Special Forces) 설립에 기여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56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 콜로라도에서 광업 회사를 운영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
평가와 논란
퍼티그는 민다나오 섬 주민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미국 특수부대 관계자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일부 전문가는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릴라 지도자 10인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부하 장교들과 동시대 인사들은 그의 지도력에 비판적이었으며, 그의 전쟁 활동을 미화한 문헌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특히 일부 부하들은 퍼티그가 미국인을 우대하고 필리핀인을 소외시켰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자가 진급 행위가 매카아더 장군의 총사령부와 마찰을 빚은 점도 기록되어 있다.
대중문화 속 등장
퍼티그와 민다나오 게릴라 활동은 존 키츠(John Keats)의 저서 《그들은 홀로 싸웠다》(They Fought Alone, 1965)를 비롯한 여러 서적의 소재가 되었다. W.E.B. 그리핀의 소설 시리즈에서도 퍼티그와 그의 게릴라 활동이 등장한다. 퍼티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여러 차례 기획되었으나, 현재까지 제작되지는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