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 1552년 또는 1554년 ~ 1618년 10월 29일)은 영국의 정치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신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생애 초기
월터 롤리는 잉글랜드 데번주 이스트 번들리 교구의 헤이스 버튼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기록에 따라 1552년 또는 1554년으로 전해지며,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 월터 롤리는 데번 주의 소영주였고, 어머니 캐서린 챔퍼노운은 모드버리 영주 필립 챔퍼노운의 넷째 딸이었다. 롤리는 다섯 아들 중 막내였으며, 탐험가 험프리 길버트의 이부(異父)형제이다. 가족은 개신교 쪽과 가까웠으며, 가톨릭 교도였던 메리 1세 여왕 치세에는 여러 차례 도피를 경험했다. 1572년 옥스퍼드 대학교 오리엘 칼리지의 학생이 되었고, 1575년 미들 템플 법학원에 입학했다.
신세계 탐험과 식민지 건설
롤리는 여러 차례 신세계로 항해하여 식민지 탐사를 진행했다. 1584년 북아메리카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인 로어노크 식민지(버지니아)를 로어노크 섬에 건설했다. 그러나 토양이 건조하고 모래질이었으며, 정착민들에게 농업 기술이 부족했고 원주민과의 관계도 악화되어 결국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다. 1587년 존 화이트 감독관의 지휘 아래 두 번째 식민지 개척을 시도했으나, 보급품을 싣고 돌아온 화이트는 1591년이 되어서야 식민지에 도착했고, 그때 정착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나무줄기에 새겨진 "CROATOAN"이라는 단어만이 유일한 단서로 남았으며, 이 식민지는 현재 "잃어버린 식민지"로 알려져 있다. 롤리의 항해와 투자는 이후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아일랜드에서의 활동
1579년부터 1583년 사이, 롤리는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데스몬드의 반란 진압에 참여하여 요르(Youghal)와 리스모어(Lismore)를 포함한 약 1,600km²의 토지를 분배받았다. 그는 17년간 아일랜드 지주로 지냈으며, 전설에 따르면 아일랜드 지역에 처음으로 감자를 심은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감자의 모종은 스페인과의 무역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또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하인이 주인의 몸에 불이 붙었다고 착각하여 물을 퍼부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아일랜드에서는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와 교류했으며, 1590년 스펜서와 함께 런던으로 가 엘리자베스 1세에게 《페어리 퀸》의 일부를 봉헌하기도 했다.
일화
진흙길 위에 값진 망토를 펼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지나가게 하였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일설에는 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애인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이다.
사망
1603년 정치적 문제로 런던탑에 12년간 유폐되었다. 석방 후 다시 탐험을 떠났으나, 부하 로버트 케이미스가 무단으로 스페인인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롤리는 스페인과의 무력 충돌 금지 조건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어 1618년 10월 29일 웨스트민스터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