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로스차일드 남작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 2nd Baron Rothschild, 1868년 2월 8일 ~ 1937년 8월 27일)는 영국의 은행가, 정치인, 동물학자, 군인이다. 국제적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으로, 로스차일드가의 창시자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고손자이다.
생애
월터 로스차일드는 런던에서 제1대 로스차일드 남작 네이던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와 에마 루이제 폰 로스차일드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영국 최초의 유대인 귀족(초대 남작)이었던 막대한 자산가였다. 월터는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독일 본 대학교(University of Bonn)에서 1년간 수학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막달렌 칼리지에 진학하여 동물학을 공부했다.
21세가 되던 1889년부터 1908년까지 약 15년간 가족 소유의 은행인 N M Rothschild & Sons에서 근무했으나, 금융 업무에 관심이나 능력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40세가 되던 1908년에야 은행 업무를 그만두고 동물 표본 수집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동물학 박물관을 설립해 주었고, 전 세계 탐사 원정대의 비용을 지원했다.
동물학 활동
월터 로스차일드는 생애 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동물 표본 컬렉션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컬렉션은 조류 가죽 30만 점, 조류 알 20만 점, 나비 225만 점, 딱정벌레 3만 점을 포함하여 수천 점의 포유류, 파충류, 어류 표본에 달했다. 이는 개인이 수집한 동물학 표본 중 최대 규모였다.
그는 1892년 트링(Tring)에 개인 박물관을 개관하여 공개하였으며, 조류학자 에른스트 하르테르트(Ernst Hartert)와 곤충학자 카를 요르단(Karl Jordan) 등 전문 과학자들을 고용하여 표본을 정리하고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로스차일드 기린(Giraffa camelopardalis rothschildi)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아종이다. 그 외에도 153종의 곤충, 58종의 조류, 17종의 포유류 등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32년에는 자신을 협박한 전 애인에게 거액을 갈취당한 이후 조류 컬렉션의 대부분을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1937년 사망 시 그의 박물관과 소장품 전체는 유언에 따라 영국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에 기증되었으며, 이는 해당 기관이 역사상 받은 최대 규모의 기증이었다. 현재 트링의 월터 로스차일드 동물학 박물관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한 분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치 및 군사 활동
월터 로스차일드는 자유연합당(Liberal Unionist Party) 소속으로 1899년부터 1910년 1월 총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에일즈베리(Aylesbury) 지역구 영국 하원의원을 지냈다.
군사적으로는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영토군(Territorial Army) 부대인 로열 버킹엄셔 여용병대(Royal Buckinghamshire Yeomanry)에서 장교로 복무하였다. 1902년 대위로 임명되었으며, 1903년 소령으로 진급하였다가 1909년 제대하였다.
시오니즘과 밸푸어 선언
월터 로스차일드는 활동적인 시오니스트였으며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유대인 국가 수립에 관한 선언문 초안 작성에 기여하였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는 그의 런던 자택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는데, 이 서한이 역사적으로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영국 유대인 대표원(Board of Deputies of British Jews)의 총재를 지냈다.
귀족 승계와 사망
월터 로스차일드는 1915년 부친의 사망으로 제2대 로스차일드 남작 자작위를 승계하였다. 그는 1911년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98년 기센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적자(嫡子)가 없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정부(情婦)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딸 올가 앨리스 뮤리엘 로스차일드를 낳았다. 1937년 8월 27일, 허트퍼드셔의 트링 파크에서 척수암으로 사망하여 런던의 윌레스덴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동생 찰스가 그보다 먼저 사망하였으므로 남작위는 조카인 빅터가 승계하였다.
주요 저술
로스차일드는 약 765편의 학술 논문과 저서를 발표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하와이 제도 조류에 관한 《레이산과 인근 섬의 조류상》(The Avifauna of Laysan and the Neighbouring Islands, 1893~1900), 화석 조류 연구서인 《멸종 조류》(Extinct Birds, 1907) 등이 있다. 그는 1894년 《Novitates Zoologicae》라는 학술지를 직접 창간하여 하르테르트, 요르단과 함께 편집자로 활동했다.
평가
월터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전통을 계승한 인물이면서도, 개인으로서는 동물학에 평생을 바친 수집가이자 연구자로 기억된다. 특히 그의 이름을 딴 로스차일드 기린과 트링 동물학 박물관은 그의 학문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밸푸어 선언의 수신인으로서 시오니즘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