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흥(元興)은 중국 후한(後漢, 동한)의 제4대 황제인 화제(和帝) 유조(劉肇)의 두 번째 연호이다. 화제는 88년부터 105년까지 재위하였으며, 첫 번째 연호인 영원(永元, 89년~105년)에 이어 105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원흥 연호를 사용하였다.
개원 시점에 대해서는 사서마다 기록에 차이가 있다. 《후한서》와 《자치통감》에는 영원 17년(105년) 4월 경오일(庚午日)에 개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해당 음력 4월에는 경오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후한기(後漢紀)》 화제기에는 개원일을 4월 병오일(丙午日)로 기록하면서 4월 삭일을 표기하여 경오일이 없다는 점을 별도로 언급하고 있다. 위키백과의 계산에 따르면 영원 17년 5월 18일(율리우스력 105년 6월 17일)에 연호를 개원한 것으로 비정된다.
105년 12월 화제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상제(殤帝) 유융(劉隆)이 원흥 연호를 그대로 이어 사용하였으며, 106년에 연평(延平)으로 개원하였다. 따라서 원흥 연호는 실질적으로 105년 한 해 동안만 사용된 단명 연호이다.
원흥(元興)이라는 연호는 후한 외에도 다른 중국 왕조에서 반복하여 사용되었다. 손오(孫吳)의 말제(末帝) 손호(孫皓)가 264년부터 265년까지 사용하였고, 동진(東晉)의 안제(安帝) 사마덕종(司馬德宗)이 402년부터 404년까지 사용하였다. 또한 10세기 정안국(定安國)의 오현명(烏玄明)도 976년부터 986년까지 원흥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연호의 한자 의미는 '元'(으뜸 원)과 '興'(일어날 흥)으로, '크게 일어난다' 또는 '새롭게 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