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가나안 문자(Proto-Canaanite alphabet)는 청동기 시대 후기(기원전 15세기경~기원전 1050년)에 레반트(가나안) 지역에서 사용된 고대 문자 체계이다. 22개의 상형 문자로 구성된 두음서법(Acrophony)에 기반한 자음 문자(아브자드)이며, 가나안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기원전 1050년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의 문자를 관습적으로 원시 가나안 문자라고 부르고, 이후의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라고 구분한다. 원시 가나안 문자로 쓰인 약 10개의 비문이 현재 이스라엘과 레바논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계통 및 기원
원시 가나안 문자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발전하여 간략화된 일상 이집트 선형문자를 선조로 하며, 원시 시나이 문자(Proto-Sinaitic script)와 깊은 관계가 있다. 원시 시나이 문자는 기원전 19~18세기경 시나이반도에서 발견된 초기 음소 문자로, 원시 가나안 문자는 이 문자 체계의 직접적인 후계로 간주된다. 1905년과 1999년에 이집트 중부에서 원시 가나안 문자의 시조형이 되는 문자가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이 초기 형태에는 부분적으로 표어문자적인 성질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대 문자와의 관계
원시 가나안 문자는 이후 페니키아 문자로 발전하였고, 페니키아 문자에서 아람 문자, 고대 히브리 문자, 그리스 문자 등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현대에 사용되는 시리아 문자, 히브리 문자, 아랍 문자, 그리스 문자, 로마자(라틴 문자), 아르메니아 문자, 조지아 문자, 키릴 문자 등 서양과 중동의 주요 문자 체계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원시 가나안 문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특징
원시 가나안 문자는 후세의 문자 체계보다 글자 수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체자(동일한 음가를 가진 다른 형태의 글자)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각 문자의 이름은 해당 문자가 나타내는 대상의 이름에서 유래한 두음서법 방식으로, 예를 들어 '알레프'(𐤀)는 소(牛)를, '베트'(𐤁)는 집을 의미하는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고고학적 발견
2018년 이스라엘 라키시(Lachish) 유적에서 기원전 1450년경으로 연대 측정된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 새겨진 글자는 원시 가나안 문자로 추정되었다. 이 발견은 시나이반도의 초기 음소 문자와 이후 남부 레반트 문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메우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된다. 또한 2022년에는 같은 라키시 유적에서 기원전 1700년경의 상아 머리빗이 발굴되었는데, 여기에는 "이 엄니가 머리카락과 수염의 머릿니를 박멸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완전한 문장이 원시 가나안 문자로 새겨져 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알파벳 문장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