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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지

원선지(元善之)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중찬(中贊) 원부(元傅)의 손자이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원경(元卿)의 아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출생 연도는 1281년(충렬왕 7), 사망 연도는 1330년(충혜왕 즉위년)이다.

원선지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7세에 서면도감판관(西面都監判官)이 되고 좌우위호군(左右衛護軍)의 직에 올랐다. 아버지 원경은 당시 폐신(嬖臣, 간신)으로 평가되었으며, 원선지의 초기 관직 진출은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었다. 1311년(충선왕 복위 3)에는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의 부름을 받아 중현대부(中顯大夫) 밀직사 우부대언(右副代言) 사복정(司僕正) 지삼사사(知三司事)에 임명되었고, 아버지의 직을 물려받아 소신교위 정동도진무(昭信校尉征東都鎭撫)가 되었다.

이후 1314년(충숙 1) 지면주사(知沔州事)로 나갔고, 1321년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를 거쳐 대사헌 판전의시사(大司憲判典儀寺事)로 옮겼다. 1320년(충숙 7) 환관 빠앤투그스(伯顔禿古思)의 모략으로 충선왕이 티베트(吐蕃)로 유배되고 충숙왕이 원나라에 머물 당시, 고려의 많은 인사들이 조적(曺頔)의 당에 가담했으나 원선지는 홀로 의리를 지켜 칭송을 받았다. 1324년 밀직부사가 되고 이어 동지밀직사사에 이르렀다가 파직되었으며, 이후 광정대부(匡靖大夫)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 상호군(上護軍)으로 6년간 한거하다가 1330년 세상을 떠났다.

원선지는 거문고와 바둑에 능하였고, 약제(藥劑)에 조예가 깊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묘지명(墓誌銘)은 최해(崔瀣)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실려 있으며, 묘지명 실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참고 자료로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있다.

한편 일부 자료에서는 원선지의 생몰 연도를 1288년~1330년 또는 1288년~1337년 등으로 달리 기록하기도 하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281년~1330년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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