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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함흥 전투

원산-함흥 전투(元山-咸興戰鬪)는 한국 전쟁(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3일부터 12월 15일까지 함경남도 함흥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원산-함흥 철수' 또는 '원산-함흥 기지전투'라고도 불린다.

배경

1950년 11월,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던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군)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인해 후퇴하게 되었다. 동부전선에서는 미 제10군단 예하 부대들이 장진호 전투(1950.11.27~12.13)를 치르며 함흥과 원산 방향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엔군과 한국군은 함흥과 원산 일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해상을 통한 철수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투 경과

한국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준장)는 미 제10군단(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에 배속되어 원산 방어와 함흥 교두보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12월 3일, 해병대 사령부는 함흥 남쪽 지경국민학교에 설치되었고, 제2대대와 제5대대는 함흥 지역에, 제1대대와 제3대대는 원산 지역에 각각 배치되었다.

원산에서는 12월 7일부터 중공군과 북한군 혼성부대가 원산 시내로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해병대는 원산 부두와 비행장 방어를 위해 교전을 벌였다. 12월 8일 원산이 적군에 점령되었으나, 해병대는 비행장에서 우군의 이륙을 엄호하고 시설 반출을 지원하였다. 12월 9일 최종적으로 원산에서 철수하여 선박에 탑승, 원산만을 출항하였다.

함흥 지역에서는 해병대가 미 제3사단의 작전통제 아래 함흥교두보 남쪽 방어와 미 제7연대의 이동 엄호 임무를 수행하였다. 해병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야간 근접전을 통해 중공군에 대응하며 방어선을 유지하였다.

철수

12월 13일부터 해병대는 철수 준비에 착수하였고, 12월 14일 제2대대가 진지를 미 제7연대에 인계한 후 연포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12월 15일, 함흥에 있던 제5대대가 연포비행장에 도착하였고, 해병대는 항공편으로 부산을 거쳐 진해로 복귀하였다.

결과

해병대는 1950년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한 이후 12월 15일 연포를 떠날 때까지 적 사살 715명, 부상 315명, 포로 18명 등의 전과를 기록하였다. 이후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흥남 철수 작전이 이어져,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장병 약 10만 명, 차량 17,000대, 피난민 약 10만 명, 군수품 35만 톤이 동해상으로 안전하게 철수하였다.

의의

원산-함흥 전투는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위기에 처한 유엔군이 함흥과 원산을 통해 해상으로 철수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한 전투로 평가된다. 한국 해병대가 중심이 되어 원산과 함흥을 방어하고 아군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함으로써, 유엔군이 큰 혼란 없이 차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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