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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국사

원명국사(圓明國師)는 고려시대의 왕자이자 화엄종 승려인 왕징엄(王澄儼, 1090년~1141년)의 시호(諡號)이다. '원명(圓明)'은 그가 입적한 뒤 추증된 국사(國師)의 칭호로, 일반적으로 원명국사라 하면 이 인물을 가리킨다.

출생과 가계

원명국사 징엄은 1090년(선종 7년), 고려 제15대 국왕 숙종(肅宗)과 명의왕태후(明懿王太后) 유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제16대 국왕 예종(睿宗)의 친동생에 해당하며, 초명은 징길(澄佶)이었다. 이후 북송 휘종(徽宗)의 이름 '길(佶)'자를 피휘하기 위해 이름을 징엄(澄儼)으로 고쳤다.

불교 입문과 승려 생활

1095년 아버지 계림공이 숙종으로 즉위하면서 왕자의 신분이 되었고, 1097년(숙종 2년) 8세의 나이에 흥왕사(興王寺)에 있던 숙부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에게 의탁하였다. 이듬해인 1098년(숙종 3년) 명경전(明鏡殿) 앞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102년(숙종 7년) 왕명으로 중광사(重光寺)의 주지가 되었고, 1105년(숙종 10년) 승통(僧統)에 올랐으며 '복세(福世)'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예종 시기에는 홍원사(洪圓寺), 개태사(開泰寺), 귀신사(歸信寺) 등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1118년(예종 13년) 흥왕사의 주지가 되었다가 이듬해 병으로 사임하였고, 이후 숭선사에 거주하다가 귀신사의 주지를 맡았다.

오교도승통과 은퇴

1122년(인종 즉위년) 인종이 즉위하자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에 임명되었으나,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횡포를 보고 귀신사로 물러나 은퇴하였다. 1131년(인종 9년) 인종이 그를 불러들여 흥왕사에 머물게 하였으며, 인종은 그를 황숙(皇叔)으로 존경하며 예우하였다.

입적과 추증

1141년(인종 19년) 4월 21일, 나이 52세, 법랍 44년으로 입적하였다. 입적 후 국사로 추증되고 시호를 원명(圓明)이라 하였다. 흥왕사 서쪽 천덕산 남쪽 기슭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승천부 약산촌 북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예부시랑 권적(權適)이 왕명을 받아 묘지명을 지었다. 그의 묘지명은 '흥왕사 원명국사묘지(興王寺圓明國師墓誌)'로 알려져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풍군 흥왕사지에서 출토되어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후대의 원명국사

한편, 고려 후기 충렬왕 시기(13세기 후반~14세기 초)에도 '원명국사'로 불린 승려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에 따르면 이 인물은 1280년(충렬왕 6년) 부모의 명으로 남원의 선원사(禪源寺)에 출가하여 자오국사(慈悟國師)의 제자가 되었고, 1292년 승과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올랐으며, 원나라에 들어가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어 상세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의의

원명국사 징엄은 고려 왕실 출신 승려로서 화엄종의 교단 체계 안에서 승관(僧官)을 역임하며 왕실 불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고려사』 열전과 흥왕사 원명국사묘지 등의 금석문 자료를 통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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