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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군 (왕족)

운산군 이계(雲山君 李誡, 1453년~1510년 12월 17일)는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름은 계(誡), 자는 신옹(愼翁),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조선 세종대왕의 다섯째 서자인 밀성군 이침(密城君 李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1453년(세종 35)에 태어나 처음에 운산정(雲山正)에 제수되었고, 12세에 정의대부(正義大夫)를 제수받았다. 삼촌인 세조(세종의 둘째 아들)의 총애를 받아 세조로부터 직접 사서와 경서를 배웠다. 이후 계천령(溪川令)에 봉해졌다가 1460년 세조의 황해도·평안도 순행을 배종하였고, 1461년 계천감(溪川監)이 되었다. 세조는 미성년자인 그를 승헌대부(承憲大夫)로 승진시켰다.

1468년(세조 13) 세조가 친히 무거(武擧)의 초시·중시 합격자에게 강을 하고 시관 신숙주(申叔舟) 등에게 명하여 시험할 때 합격자로 뽑혔다. 같은 해(예종 1) 10월 승헌대부 운산군(雲山君)에 봉해졌다. 1480년(성종 11) 가덕대부로 승자되었고, 성종 때 흥록대부로 승진한 뒤 종부시도제조직을 맡았다. 1495년(연산군 1) 현록대부가 되었고, 1499년(연산군 5) 흥록대부로 강작되었으며 종부시제조, 종부시도제조, 문소전(文昭殿), 사옹원(司饔院)을 겸직했다.

1504년(연산군 9)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가 거론되었으나 연산군의 옹호로 면죄되었다. 연산군 치세 후반, 연산군의 통치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보고 근심하며 술로 나날을 보냈다. 1506년(연산군 11) 박원종, 성희안 등이 주도한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진성대군(중종)을 추대하였고, 그 공으로 병충분의익운정국공신 2등(秉忠奮義翊運靖國功臣二等)에 책록되었다. 1509년(중종 4) 종친부제조, 종부시제조, 사옹원제조를 겸직 임명되었으나, 대간이 그가 의롭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였다며 제조직 겸직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중종이 거절하였다.

1510년(중종 5) 12월 17일 정침에서 사망하였다. 중종은 그의 부음을 듣고 2일간 조회를 철조하였고, 시호를 공소(恭昭)라 내렸다.

사후

1519년(중종 14) 조광조가 위훈삭제를 할 때 공이 없는 자들 중 운산군도 지목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복작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가마리에 있는 아버지 밀성군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가족 관계

어머니는 풍덕군부인 여흥 민씨(민승서의 딸)이다. 첫 부인은 신천군부인 현풍 곽씨(곽득륜의 딸)로 딸만 1명을 두었고, 계부인은 오천군부인 연일 정씨(정자숙의 딸)로, 이는 송강 정철의 증조부의 딸에 해당한다. 슬하에 철성군 이갱, 고성부정 이강, 광성정 이전 등의 아들과 여러 딸을 두었다.

기타

운산군은 세종의 현손(5대손)인 이극강(좌찬성 역임)의 조부이며, 이후 영의정 이경여, 대제학 이민서, 좌의정 이관명, 우의정 이휘지 등 조선 후기 명문가로 이어지는 밀성군파 가계의 중간 조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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