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禹長春, 1898년 4월 8일 ~ 1959년 8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농생물과학자, 식물학자, 원예육종학자이다.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조선 말기의 무신 우범선(禹範善), 어머니는 일본인 사카이 나카(酒井 나카)이다. 아버지 우범선이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한 뒤 1903년 암살되면서, 우장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히로시마에서 마치고, 1916년 도쿄제국대학 실과(전문대학)에 입학하여 1919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 취직하여 1937년 퇴직할 때까지 약 18년간 육종 연구에 몰두하였다. 1936년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와 정규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진이 지연되기도 하였으나, 퇴임 직전 기사(技師)로 승진하였다.
우장춘의 대표적 학문적 업적은 1935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십자화과(배추속, Brassica) 식물의 게놈 분석을 통해 유채(B. napus)가 배추(B. campestris)와 양배추(B. oleracea)의 자연 교잡종임을 실험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종을 재료로 하여 또 다른 종을 실험적으로 합성해 낸 '종의 합성' 연구로, 세계적으로 이 방면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이 성과는 '우장춘의 삼각형(Triangle of U)'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수정과 보충을 가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초기에는 나팔꽃과 페튜니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겹꽃이 피는 페튜니아 계통을 육성하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머물다가, 1950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사망할 때까지 약 9년 5개월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중앙원예기술원장, 원예시험장장 등을 역임하였다. 귀국 후에는 그때까지 일본에 크게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내에서 자급할 수 있도록 하였고, 무균종서(無균종서) 생산을 통해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 해결에 기여하였다. 또한 일본 재래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여 한국 환경에 적합한 결구배추를 개발하고, 제주도 환경에 적합한 감귤 재배와 유채 도입을 권하는 등 국내 농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사망 전에는 수도이기작(水稻二期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우장춘은 1957년 부산시 제1회 문화상 과학부문상을 받았고, 1959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받았다. 1959년 8월 10일 만성 위·십이지장 궤양으로 사망하였으며, 유해는 경기도 수원시에 소재한 구 농촌진흥청 구내 여기산에 안장되었다.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부산광역시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우장춘 기념관이 있다.
한편, 우장춘이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했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 없는 수박은 일본인 기하라 히토시(木原仁)가 1947년에 처음 만들었으며, 우장춘은 대한민국에서 이를 처음으로 시연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