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키 고시로(植木庚子郎, 1900년 1월 28일 ~ 1980년 3월 11일)는 일본 쇼와 시대의 정치인이자 대장성(재무성) 관료이다. 본명의 한자는 '植木庚子郎'이며, 일본어로는 '우에키 코시로'로 읽는다.
우에키 고시로는 1900년 1월 28일, 일본 후쿠이현(福井県) 단노군(丹生郡) 덴신촌(天津村) 시미즈야마(清水山, 현재의 후쿠이시 시미즈야마초)에서 태어났다. 이후 우에키 신이치(植木信一)의 양자가 되었다. 후쿠이현립 후쿠이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1925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한 뒤 대장성에 입성하였다. 당시 동기로는 훗날 일본 총리가 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와 일본은행 총재를 지낸 야마기와 마사미치(山際正道)가 있었다.
대장성 내에서는 주계국(主計局) 조사과장, 주계국 예산과장, 주계국장, 전매국(専売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46년 공직 추방 조치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추방 해제 이후 1952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총 9회 당선되었다. 소속 정당은 자유당을 거쳐 자유민주당이었다.
정치 경력으로는 1960년 12월부터 1962년 7월까지 제2차 이케다 내각에서 법무대신(제15대)을 지냈고, 1971년 2월부터 7월까지 제3차 사토 내각에서 다시 법무대신(제28대)을 역임하였다. 1972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제1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에서 대장대신(제76대)을 지냈다. 또한 자유민주당 세제조사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였다. 국회에서는 중의원 예산위원장, 대장위원장 등을 맡았다.
1968년에는 사가미 여자대학 총장으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1976년 12월 중의원 의원에서 물러났으며, 1980년 3월 11일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나이는 80세였다. 사후 특지(特旨)로 위계가 정4위에서 정3위로 추증되었고, 훈등은 훈1등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을 받았다.
우에키 고시로는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서 예산·세제 분야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되며, 전후 일본의 재정·세제 정책 수립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