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 1556년 1월 8일 ~ 1623년 4월 19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한 다이묘이다. 도요토미 정권의 오대로(五大老) 중 한 명이었으며, 무쓰 와카마쓰성 성주와 데와 요네자와번의 초대 번주를 지냈다.
출신과 가문 상속
가게카쓰는 1556년 에치고국에서 우에다 나가오 가문의 당주 나가오 마사카게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우에스기 겐신의 친누나였으므로, 그는 겐신의 조카에 해당한다. 1564년 아버지 마사카게가 사망한 뒤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되었다. 초명은 나가오 아키카게였으며, 1575년에 이름을 우에스기 가게카쓰로 바꾸었다.
1578년 겐신이 사망하자, 가문의 상속권을 둘러싸고 같은 겐신의 양자였던 우에스기 가게토라와 대립하였다. 이른바 오타테의 난(御館の乱)으로 불리는 이 상속 분쟁에서 가게카쓰는 승리하여 우에스기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오다 가문과의 대립
1581년 에치고 북부에서 시바타 시게이에가 오다 노부나가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오다 군이 엣추까지 침공하면서 우에스기 가문은 위기에 처했다. 1582년 오다 군이 엣추를 완전히 제압하여 가문이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같은 해 6월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연이은 분쟁과 침공으로 우에스기 가문은 크게 쇠퇴하였다.
도요토미 시대
1586년 가게카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어 가문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엣추와 고즈케 등의 영지를 포기하는 대신 사도와 데와 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1587년 시바타 시게이에를 처단하고, 1589년에는 사도를 평정하였다. 1590년 히데요시의 호조 가문 정벌에도 참전하였다.
1592년에는 가신을 보내 임진왜란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597년 고다이로였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오대로가 되었다. 1598년 히데요시의 명으로 영지가 아이즈로 옮겨졌으며, 120만 석의 녹봉을 받게 되었다.
아이즈 정벌과 세키가하라 전투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이의 대립이 깊어졌다. 가게카쓰의 가로인 나오에 가네쓰구가 미쓰나리와 친밀했기 때문에, 가게카쓰는 이에야스와 대립하게 되었다.
1600년 이에야스가 가게카쓰를 교토로 소환하자 가게카쓰는 이를 거부하고, 나오에 가네쓰구가 이에야스를 도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격노한 이에야스는 대군을 이끌고 우에스기 토벌에 나섰다. 이에야스가 교토를 비운 사이 미쓰나리가 거병하면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고, 가게카쓰는 서군에 가담하여 다테 마사무네, 모가미 요시아키 등과 싸웠다. 그러나 9월 15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패배하자, 12월 가게카쓰는 이에야스에게 항복하였다.
에도 시대
1601년 가게카쓰는 나오에 가네쓰구와 함께 교토로 올라가 이에야스에게 사죄하여 가문의 존속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영지의 대부분을 몰수당하고 오키타마 군, 시노부 군, 다테 군의 세 군만 남겨져, 데와 요네자와번의 초대 번주가 되어 30만 석의 녹봉을 받게 되었다.
가게카쓰는 나오에 가네쓰구와 협력하여 요네자와 번의 마을을 건설하고 법제를 정비하는 등 지배체제 확립에 힘썼다. 그러나 영지가 대폭 줄었음에도 가신 수를 거의 줄이지 않아, 이후 우에스기 가문은 여러 차례 재정난에 부딪혔다.
1614년 오사카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군의 선봉으로 활약하였다. 1623년 3월 20일 요네자와에서 사망하였으며, 향년 69세였다. 적자인 사다카쓰가 가문을 이었다.
인물 평가
가게카쓰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했을 때에도 "무운이 쇠한 것이니 이제 와서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라고 전해진다. 양부이자 외숙인 겐신을 존경하였으며, 자신의 기량이 겐신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겐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