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우에다 겐키치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1875년 3월 8일 ~ 1962년 9월 11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이었다.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 제10기와 육군대학 제21기를 졸업하였다. 주로 기병 분야에서 복무하였으며, 시베리아 출병, 중일 전쟁, 소련-일본 국경 분쟁 등에 관여하였다.

우에다 겐키치는 1928년 중장으로 진급한 뒤,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일본 주중국 수비군 사령관을 지냈다. 1930년부터 1932년까지는 제9사단장으로 재임하면서 제1차 상하이 사변에 참전하였으나, 중국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한국인 독립운동가 윤봉길이 투척한 폭탄으로 한쪽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으나, 이후에도 현역에 남아 일본 육군 참모본부 부참모총장(1933~1934)을 지냈다.

1934년에는 조선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28일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관동군 사령관 겸 주만(駐滿) 일본 대사를 역임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만주국과 북중국 지역의 불법 마약 거래를 단속하는 조치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에다 겐키치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주장하는 '북진론(北進論)'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는 만주-몽골 국경에서 소련군과의 충돌을 초래한 부대의 무단 행동을 용인하였으며, 이는 1939년 5월부터 8월까지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으로 이어졌다. 소련군에 대한 참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진론을 고수하며 유사한 행동을 자제시키지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39년 말 일본으로 소환되어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공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지냈으며, 전후에는 각종 재향군인 단체의 명예 회장을 지냈다. 1962년 9월 11일 사망하였다.

주요 훈장으로는 1931년 훈1등 서보장(瑞宝章), 1934년 훈1등 욱일장(旭日章) 및 공3급 금치훈장(金鵄勲章)이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