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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걸득귀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 ? ~ ?)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선비족의 일파인 우문선비(宇文鮮卑)의 수령이다. 생몰년은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 없다.

개요

우문걸득귀는 우문선비의 전임 수령이었던 우문손닐연(宇文遜昵延)의 아들이다. 형으로는 우문실발퇴(宇文悉跋堆)가 있었다. 아버지 우문손닐연이 모용부(慕容部)의 모용외(慕容廆)에게 패배하여 사망한 후, 우문걸득귀가 수령의 자리를 이었다.

생애

우문걸득귀는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으로부터 관작을 받고, 325년 석륵의 요청으로 모용외를 공격하였다. 그는 요수(澆水)를 점거하여 모용황(慕容皝)의 진격을 막으려 하였으나, 모용황과 모용인(慕容仁)의 공격으로 크게 패배하였다. 이 전투에서 우문걸득귀는 군사를 버리고 도망쳤으며, 모용군에게 우문부의 보물과 가축 약 100만 두를 빼앗기고 백성 수만 명이 모용부에 항복하는 피해를 입었다.

323년에는 반대로 모용외가 우문걸득귀를 공격하였다. 모용외는 배억(裴嶷)을 우부도독(右部都督)으로 삼고 색두(索頭)를 오른쪽, 아들 모용인을 왼쪽에 배치하여 공격하였다. 우문걸득귀는 방어에 치중하며 정면 대결을 피하고, 형 우문실발퇴를 백림(柏林)으로 보내 모용인과 싸우게 하였으나, 모용인이 우문실발퇴를 죽였다. 이후 모용외가 우문걸득귀를 공격하여 포획하는 데 성공하였고, 우문선비의 중심지를 점령하였다.

333년, 우문부의 동부대인(東部大人)이었던 우문일두귀(宇文逸豆歸)가 반란을 일으켜 우문걸득귀를 공격하였고, 우문걸득귀는 밖으로 달아났다. 이후 우문일두귀가 우문걸득귀를 살해하고 수령의 자리를 이은 것으로 전해진다.

평가 및 기록

우문걸득귀에 관한 주요 기록은 『진서(晉書)』, 『위서(魏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중국 정사에 산견된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우문부는 모용부 및 후조와의 관계 속에서 세력 다툼을 지속하였으며, 결국 내부 권력 다툼으로 인해 우문일두귀에게 축출되고 살해되었다. 이후 우문부는 344~345년경 전연(前燕)에게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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