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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키 군축

우가키 군축(일본어: 宇垣軍縮)은 1925년(다이쇼 14년), 일본 가토 다카아키(加藤高明) 내각의 육군대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에 의해 단행된 일본 제국 육군의 군비 축소 정책을 가리킨다.

개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군축이 대세가 되면서 해군력의 군축이 주요국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일본 육군에서도 극동 지역의 군사적 위협이 감소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 의회의 압력을 받아 이미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육군대신 주도 아래 두 차례에 걸쳐 군비 정리·축소(야마나시 군축)가 실시되었으나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1923년(다이쇼 12년) 9월 관동대지진 발생으로 인한 부흥 비용 마련의 필요성이 더해져, 1925년 5월 우가키 가즈시게 육군대신의 주도로 제3차 군비 정리가 이루어졌다.

주요 내용

폐지된 부대 및 시설

  • 제13사단(다카다), 제15사단(도요하시), 제17사단(오카야마), 제18사단(구루메) 등 4개 사단 해체
  • 연대구사령부 16개소 폐지
  • 육군병원 5곳 폐지
  • 육군유년학교 2개교 폐지
  • 결과적으로 약 34,000명의 장병과 군마 6,000마리가 감축되었다.

신설된 부대 및 시설

  • 1개 전차 연대(구루메)
  • 1개 고사포 연대(하마마쓰)
  • 2개 비행 연대(하마마쓰, 핑둥)
  • 1개 대만산포연대(타이베이)
  • 육군자동차학교(도쿄)
  • 육군통신학교(가나가와)
  • 육군비행학교(미에, 지바)

특징

야마나시 군축이 사단 수를 유지하고 장관급(將官) 직위를 줄이지 않은 것과 달리, 우가키 군축은 4개 사단을 직접 해체함으로써 장관급 인원의 정리를 실질적으로 단행했다. 이는 군비 축소를 명분으로 삼아 일본 육군의 과감한 체질 개선, 즉 근대화를 목표로 한 조치였다. 게이힌(京浜) 및 한신(阪神) 지역에 가까운 우쓰노미야 제14사단과 교토 제16사단은 존치되었으며, 위계지(魏階地) 소실을 막기 위한 부대 이주와 연대의 전통을 존중하기 위해 기존 연대 번호를 계승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진행되었다.

영향과 평가

사단의 존재는 각 지역의 위계(位階)와 직결되어 있었기에 사단 폐지는 해당 지역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일본 국민 사이에 군부를 멸시하는 풍조를 낳아 육군 내 사기 저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군축을 통해 확보된 재원은 구미(歐美) 열강에 비해 낙후되었던 일본 육군의 장비 근대화에 투입되었다. 전차 연대, 각종 군학교의 신설 및 필요한 무기와 장비의 제조·정비가 착수되었고, 학교 교련(教練) 제도도 이 시기에 창설되었다.

한편, 사단 편제 장비의 내용은 여전히 구미 열강 육군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대량의 장교가 보직에서 해제되면서 장교 퇴역과 진급 정체, 장교 채용 범위 축소가 발생하였고, 이는 이후 중일 전쟁(1937~1945) 시기의 장교 부족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우가키 군축에 반대하는 세력은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와 마사키 진자부로(真崎甚三郎)를 중심으로 결집하여 이후 황도파(皇道派)라는 육군 내 파벌을 형성하였고, 이는 일본 육군 내 파벌 대립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우가키 가즈시게本人이 훗날 총리대신에 지명되었을 때 조각에 실패한 배경 중 하나로, 군축으로 인해 불만을 가진 육군 내 세력의 반발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야마나시·우가키 군축을 통한 일본 육군성 예산의 삭감 효과는 군축 실시 전과 비교하여 약 1할(10%) 감소에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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