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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현

용진현(龍津縣)은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문천시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옛 행정구역(현)이다. 한국의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한 지방 행정 단위로, 역사 기록과 지리지에 명확히 확인되는 실존 지명이다.

어원 및 명칭 유래

용진현은 본래 '호포'(狐浦)라고 불리던 곳으로, 고려시대에 '용진진'(龍津鎭)이 설치되면서 용진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현의 서북쪽에는 반룡산(盤龍山)이 있으며, 이 산이 현 사람들의 진산(鎭山)으로 여겨졌다고 전한다. 별호(別號)는 '용성'(龍城)이었다.

역사적 변천

고려 목종 9년(1006년)에 성을 쌓았으며, 이후 공민왕 때에는 문주(文州, 현재의 문천)에 속하게 하였다가, 1379년(우왕 5년)에 다시 나누어 현령(縣令)을 두었다. 조선 세조 5년(1459년)에는 현을 없애고 용성사(龍城社)로 격하하여 덕원도호부(德源都護府)에 속하게 하였다. 이후 현의 북쪽은 명효사(明孝社)와 구산사(龜山社)로 나누어 문천군에 이속되었으며, 이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따서 오늘날의 '명구면'(明龜面)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지리적 위치 및 특징

용진 폐현의 위치는 영흥만의 북부를 차지하는 송전만 연안으로, 농경과 더불어 해안에서는 어로 활동이 이루어지는 생산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오늘날에는 문천군 북성면 용진리로서 그 지명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쪽에 소달산 봉수(所達山烽燧)가 있어 함경도 지역과 서울을 연결하였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부근에는 해창(海倉)이 있어 문천 지역의 문호(門戶) 구실을 하였다.

관련 역사적 사건

용진현은 고려 후기 동북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258년(고종 45년)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던 시기에 용진현 출신의 토착 세력가인 조휘(趙暉)가 정주(定州) 출신의 탁청(卓靑) 등과 함께 이 지역의 병마사(兵馬使)를 살해하고 화주(和州) 이북의 땅을 몽골에 귀부시켰다. 이후 몽골은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摠管)으로 삼았다. 용진현은 이처럼 고려 말기 원나라의 직접 지배를 받았던 쌍성총관부의 영역 중 하나였다.

유적

용진현의 읍성 또는 용진진(龍津鎭)의 진성으로 알려진 유적으로는 강원도 문천시 북항동·신안동 일대(구 함경남도 문천군 북성면 용진리)에 있는 '용진읍성'(문천용진읍성)이 있으며, 일명 '낭문산성'(朗門山城)이라고도 한다. 본래 덕원군에 속했던 지역이나 1942년 덕원군이 폐지되면서 문천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상의 내용은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등의 공신력 있는 사료와 백과사전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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