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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골차

사과나무의 열매. 한자어로는 사과(沙果)라 쓴다. 학명은 Malus domestica이며, 장미과(Rosaceae)에 속한다.

개요

향미성분과 육즙이 풍부하여 널리 애용되는 과일로, 지름이 3~10cm이고 편구형이며 양끝이 들어갔다. 과피는 황색 바탕에 붉은 빛이 돌며 9~10월에 익는다. 성숙함에 따라 상당량의 전분이 당분으로 분해되므로 잘 익은 것은 매우 달게 느껴진다. 향미성분으로는 여러 가지 유기산이 있으나 그중 대표적인 것이 말산(malic acid)이다. 비타민C가 풍부하다.

기원과 역사

사과나무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현재의 카자흐스탄 지역)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20세기경 스위스의 토굴 주거지에서 탄화된 사과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서양사과는 4,000년 이상의 재배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시대에는 재배종과 야생종을 구분한 기록이 있고 접목 번식법이 이미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재배 기술이 발달하였다.

한국에서는 예부터 재래종 사과인 능금을 재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림유사(鷄林類事)』(1103)에 의하면 고려 중엽에는 '임금(林檎)'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과실로 능금, 배, 참외, 복숭아, 대추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적인 사과 재배는 1892년(고종 29)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 심기 시작한 이래 한국 기후에 알맞아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다.

재배와 품종

재배의 주산지는 경상북도이며, 주요 품종으로는 다음이 있다:

  • 부사(후지/Fuji): 한국 사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품종. 단단하고 당도가 높아 저장성이 뛰어나다.
  • 홍옥: 새콤한 맛이 강해 잼, 주스 등 가공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 국광: 전통적인 품종 중 하나.
  • 인도: 녹색 계열의 품종.
  • 시나노스위트: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한 품종.
  • 홍로: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
  • 양광, 감홍

전 세계적으로는 약 7,500종 이상의 사과 품종이 존재한다.

이용

주로 날로 먹으며, 음료·양조·잼·건과·통조림 등으로도 이용된다. 한국에서는 거의 연중 구입할 수 있는 과일이다.

영양 및 효능

  • 식이섬유(펙틴): 포만감 유지, 변비 예방에 도움
  • 플라보노이드: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심혈관 건강에 도움
  • 비타민C와 폴리페놀: 항산화 작용
  • 말산(malic acid): 사과 특유의 새콤한 맛을 내는 유기산

참고문헌

  • 이창복, 『대한식물도감』(향문사, 1982)
  • 문수재·손경희, 『식품학 및 조리원리』(수학사, 198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과」 항목
  • 위키백과, 「사과」 항목

용골차

용골차(龍骨車)는 양수기(揚水機)로서의 수차(水車)의 하나이다. 번차(翻車)라고도 한다.

개요

용골차는 하천이나 저수지와 같이 물이 있는 곳에서 물을 대야 할 곳까지 나무통(桶)을 걸어 건네고, 용골판(龍骨板)이라고 부르는 네모난 판을 이은 순환연쇄(endless chain)를 만들어서 그것을 나무통 속에 꿰어 빙빙 돌려 그 회전에 의하여 용골판이 물을 끌어올리도록 만든 장치이다.

구조와 원리

아래쪽 끝을 하천에 담그고 비스듬히 옆으로 놓인 가늘고 긴 상자 모양의 통 속을, 서로 연결되어 고리를 이룬 나무 체인(자전거의 체인과 유사)에 많은 널빤지를 단 '용골'이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이동할 때 각 널빤지가 물을 퍼서 위로 끌어올린다. 용골은 수평 회전축의 중앙부에 축과 직각으로 방사상으로 돌출된 팔(chain wheel에 상당)에 걸려 있으며, 수평축의 회전과 함께 순차적으로 이동한다.

회전동력(回轉動力)으로는 수전(手轉, 손으로 돌림), 족답(足踏, 발로 밟음), 축력(畜力, 가축 이용), 수전(水轉, 수력 이용) 등이 사용되었다. 경사가 24°일 때 가장 효율적이며, 최대 4.65m까지 물을 퍼 올릴 수 있었다.

역사

중국에서 한대(漢代, 170년경)에 발명되어 중국 장난(江南)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2세기에 서양에 전해졌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계승되었으며, 고려말 이래로 수차라면 일반적으로 용골차, 즉 번차를 말하는 것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족답(발로 밟는) 방식의 번차가 많이 쓰였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62년(공민왕 11)에 백문보(白文寶)가 중국 양쯔강과 회수 유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수차를 보급하자고 주장하였다. 조선 성종 때인 1488년(성종 19)에는 최부(崔溥)가 표류 후 중국 소흥 지역에서 수차를 보고 와 소개하였다. 효종 때인 1650년(효종 1)에는 즉위 전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북경과 심양을 오가며 본 수차를 관개용으로 만들어 보급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자연조건(집중호우로 인한 하상계수 1:300 이상)으로 인해 수차 보급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전기 양수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실질적인 관개용 활용이 어려웠다.


참고문헌

  • 문중양, 『조선후기 수리학과 수리담론』(집문당, 2000)
  • 문중양, 「조선후기의 수차」 (『한국문화』 15,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9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차」 항목
  • 위키백과, 「용골차」 항목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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