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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스비킹

욤스비킹(고대 노르드어: Jómsvíkingr)은 10세기에서 11세기경 발트해 남안 지역에서 활동한 반(半)전설적인 바이킹 용병 집단이다. 이들은 북유럽 신앙(오딘, 토르 등)을 신봉하였으며, 충분한 대금을 지불하는 고용주라면 기독교 영주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욤스비킹은 엄격한 규율로 운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시험을 통과한 강자만을 선발하여 받아들였으며, 허락 없이 싸우거나 외출하지 않기, 동료의 명예를 지키기, 포로로 잡히거나 도망가지 않기, 여자와 아이의 출입 금지 등의 규율이 있었다. 이러한 조직적 특성 때문에 후대 중세의 기사 수도회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들의 본부는 욤스보르그(Jómsborg)라고 불리는 요새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오늘날 폴란드의 볼린(Wolin) 섬에 위치한 실베르베르크(Silberberg)로 비정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다만 10~11세기 동시대 문헌 중 "욤스비킹"이나 "욤스보르그"라는 명칭이 직접 발견되는 것은 없어, 이들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욤스비킹에 관한 주요 기록은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작성된 아이슬란드 사가들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욤스비킹의 사가》(Jómsvíkinga saga), 《트뤼그비의 아들 올라프 왕의 사가》(Óláfs saga Tryggvasonar), 《평평한 섬의 서》(Flateyjarbók) 등이 있다. 이 사가들에 따르면 욤스비킹은 984년 스웨덴의 프리스벨리르(Fyrisvellir) 전투, 986년경 노르웨이의 효룽바그(Hjǫrungavágr) 전투, 1000년경 스볼데르(Svolder) 전투 등에 참전한 것으로 묘사된다.

욤스비킹의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으로는 "꺽다리" 토르켈(Thorkell the Tall)이 알려져 있다. 그는 잉글랜드의 애설레드 2세와 덴마크의 크누트 대왕을 위해 싸웠으며, 이스트앵글리아 백작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기독교화되면서 욤스비킹은 점차 쇠퇴하였고, 1043년 노르웨이 왕 망누스 1세(올라프 2세의 아들)에게 욤스보르그가 함락된 것을 기점으로 사실상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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