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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작센)

요한(독일어: Johann, 본명 요한 네포무크 마리아 요제프 안톤 크사버 빈첸츠 알로이스 프란츠 데 파울라 슈타니슬라우스 베른하르트 파울 펠릭스 다마수스, 1801년 12월 12일 ~ 1873년 10월 29일)은 작센 왕국의 국왕이다. 재위 기간은 1854년 8월 9일부터 사망할 때까지였다.

생애 초반과 즉위 이전

요한은 드레스덴에서 작센 왕세제 막시밀리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파르마 공녀 카롤리나 디 보르보네파르마였으며, 가문은 베틴 가문의 알베르틴 계통에 속했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과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학자형 군주로 널리 인정받았다.

요한은 즉위 전부터 왕위 계승 서열에서 멀리 있었으나, 형 클레멘트가 1822년 이탈리아에서 미혼으로 사망하면서 계승 순위가 상승했다. 아버지 막시밀리안이 1830년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면서 요한은 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에 이어 2순위 계승자가 되었다. 형이 1836년 국왕으로 즉위한 후에도 형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면서 요한은 왕세자(추정 상속인) 지위를 유지하다가, 1854년 8월 9일 형의 사망으로 국왕에 즉위했다.

재위 기간의 주요 업적

재위 기간 동안 요한의 지도 아래 1855년 사법 조직 개편, 철도망 확장, 상업 자유의 도입 등이 추진되었다. 이는 주로 그의 제안과 장려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1862년 프랑스와의 상업 조약을 체결하고 이탈리아와의 협정을 인정했다.

외교적으로는 그의 재상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폰 보이스트의 영향 아래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 해결책(Großdeutsche Lösung)을 추구했다. 이로 인해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작센은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참전했으나,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패배한 후 작센은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1871년에는 독일 제국 성립에 따라 제국에 편입되었다.

문학 활동

정치 활동 외에도 요한은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필랄레테스(Philalethes)라는 필명으로 단테의 『신곡』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 작업의 일부는 베젠슈타인 성에 보관되었다. 드레스덴의 요한슈타트(Johannstadt)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가족과 사망

요한은 1822년 바이에른의 아말리에 아우구스테와 결혼하여 9명의 자녀를 두었다. 주요 자녀로는 후에 알베르트 국왕이 되는 장남과 게오르크 국왕이 되는 차남이 있다.

요한은 1873년 10월 29일 필니츠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시신은 드레스덴의 가톨릭 호프교회(Katholische Hofkirche) 왕실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뒤를 장남 알베르트가 이어받아 국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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