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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크리소스토모(그리스어: 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라틴어: Ioannes Chrysostomus, 349년경~407년)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이자 제37대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이다. '크리소스토모'(Chrysostom)는 그리스어로 '황금의 입'을 뜻하며, 이는 그의 탁월한 설교 능력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 등 기독교 내 주요 교파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며, 가톨릭과 성공회의 축일은 9월 13일, 정교회의 축일은 11월 13일이다.

생애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로마 군단 장교였던 아버지 세쿤두스와 어머니 안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이교도 수사학자 리바니우스에게 법학과 수사학을 배웠으며, 타르수스의 디오도로스에게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은둔 수도 생활에 들어갔으나 극단적인 고행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381년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오스 주교에게 부제 서품을 받았고, 386년 플라비아누스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2년간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사목 활동을 하며 성경 강해와 도덕적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설교로 명성을 얻었다. 387년에는 안티오키아 시민들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특별세 부과에 항거하여 소요를 일으킨 사건에서 평화적 중재에 기여하였다.

39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넥타리우스가 사망하자, 황제 아르카디우스의 강력한 요청으로 398년 요한이 후임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는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하고 교회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와의 갈등,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테오필루스와의 대립 등으로 인해 박해를 받고 두 차례 유배를 당하였다. 407년 유배지로 가던 도중 폰투스의 코마나에서 사망하였다.

신학적 의의 및 유산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로서 성경의 문자적·역사적 해석을 중시하였다. 방대한 양의 설교와 주석, 서한을 남겼으며, 특히 마태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로 서신에 대한 강해 설교가 유명하다. 그의 저작 중 《사제직》은 기독교 사제직의 의미를 다룬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동방 정교회 전례에서 사용되는 '크리소스토모스 전례'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동방 교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례 형식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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