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년 8월 25일 ~ 1803년 12월 18일)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신학자, 문예비평가, 시인이다. 프로이센 왕국 모른겐(현재의 폴란드 모롱크)에서 초급 교원의 아들로 태어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의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이마누엘 칸트의 강의에서 영향을 받았다. 같은 시기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하만의 제자이자 지적 후원자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헤르더는 계몽주의,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 바이마르 고전주의 시기와 관련된 사상가이다. 1764년 리가로 가서 루터교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고, 이후 목사가 되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만났는데, 이 만남은 독일 문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괴테가 슈투름 운트 드랑 운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776년 괴테의 영향으로 바이마르에 자리를 잡아 총감독관(General Superintendent)으로 재직하였으며, 이 시기 그의 사상은 고전주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헤르더의 철학은 언어, 문화, 역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다. 그는 언어가 사고의 틀과 패턴을 형성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772년 저서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Treatise on the Origin of Language)에서 언어를 '이해의 자연적 기관'이라고 정의하였다. 사고와 언어는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다는 그의 관점은 이후 빌헬름 폰 훔볼트와 언어 상대성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민족정신(Volksgeist)' 개념을 발전시켜, 진정한 독일 문화는 일반 민중(Volk) 사이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하였으며, 민요, 민속시, 민속무용을 통해 민족의 정신이 대중화된다고 보았다. 그의 민요집 《민요집》(1778)과 《민중의 노래》(1807)는 이후 아힘 폰 아르님과 클레멘스 브렌타노 등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로는 4권으로 구성된 대작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Ideen zur Philosophie 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1784~1791)이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인류 문화의 기원에서 여러 문명 단계를 거치는 발전 과정을 추적하며 자연 철학과 문화 이론을 결합하였다. 그는 인간의 진보가 자연법칙을 따라 더 큰 이성과 정의로 나아간다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인간성의 교화를 위한 서간》(1797),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1772) 등이 있다.
헤르더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였으며, 칸트 철학의 추상성과 관념성을 스피노자주의적 범신론의 입장에서 비판하였다. 만년에는 칸트 철학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인해 학계에서 고립되었고 괴테와의 관계에서도 소원해졌다. 1802년 바이에른 선제후에 의해 귀족 작위를 받아 '폰(von)'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1803년 바이마르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헤르더의 사상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프리드리히 니체,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 존 스튜어트 밀, 빌헬름 폰 훔볼트, 프란츠 보아스 등 후대의 다양한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해석학, 언어학, 인류학, 역사철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