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요하네스 브렌츠

요하네스 브렌츠(Johannes Brenz, 라틴어명: Brentius, 1499년 6월 24일 ~ 1570년 9월 11일)는 독일의 루터파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제국도시 바일데어슈타트(Weil der Stadt)에서 태어났으며, 슈베비슈할(Schwäbisch Hall)과 뷔르템베르크 공국(Duchy of Württemberg)의 종교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1514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인문학과 신학을 수학하였고,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Heidelberg Disputation)에서 마르틴 루터를 직접 접하고 그의 지지자가 되었다. 1522년 슈베비슈할의 성 미하엘 교회 설교자로 임명되어 종교 개혁 활동을 시작하였다. 1525년에는 성찬례에 관한 루터의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슈바벤 신조(Syngramma Suevicum)》를 발표하여, 츠빙글리와 외콜람파디우스의 상징적 해석에 반대하였다.

1529년 마르부르크 종교회담,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 참석하여 필리프 멜란히톤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로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 작성에 기여하였다. 1534년부터는 뷔르템베르크 공작 울리히의 초청으로 뷔르템베르크 지역의 종교 개혁에 참여하였고, 1537년부터 1538년까지 튀빙겐 대학교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1548년 아우크스부르크 중재령(Augsburg Interim)에 강력히 반대하다가 카를 5세 황제의 체포 명령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하였다. 1550년 뷔르템베르크 공작 크리스토프가 즉위한 후 귀환하여, 1552년 트리엔트 공의회에 제출할 《뷔르템베르크 신앙고백(Confessio Virtembergica)》을 작성하였다. 1553년 슈투트가르트 대학구 성당(Stiftskirche)의 수석사제(Propst)로 임명되었고, 1559년에는 뷔르템베르크 교회 질서(Große württembergische Kirchenordnung)를 제정하여 뷔르템베르크 지역 루터파 교회의 조직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브렌츠는 루터파 정통 교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특히 성만찬 교리와 그리스도론(만재설, Ubiquitätslehre)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또한 1527년과 1535년에 각각 작성한 교리문답(Fragstücke des christlichen Glaubens)은 루터의 소교리문답보다 먼저 출간된 개신교 교리문답으로, 이후 뷔르템베르크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의 후손으로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빌헬름 하우프, 프리드리히 실러(방계), 디트리히 본회퍼, 헤르만 헤세 등 여러 저명한 인물들이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