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그리스어: Ἰωάννης Καντακουζηνός, 라틴어: Ioannes Cantacuzenus)는 비잔티움 제국의 명문 귀족 가문인 칸타쿠지노스 가문(Kantakouzenos family) 구성원들이 주로 사용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중세 후기 비잔티움 역사에서 황제, 고위 관료, 군인, 학자 등 다수의 중요 인물에게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다.
1. 요안니스 6세 칸타쿠지노스 (Ioannes VI Cantacuzenus, c. 1292–1383)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재위 1347~1354)이다. 안드로니코스 3세 팔레올로고스 치세에 메가스 도메스티코스(대장군) 등을 역임하며 실권자였다. 안드로니코스 3세 사후 섭정 정치 과정에서 내전을 거쳐 요한네스 5세 팔레올로고스와 공동 황제가 되었으나, 이후 내전과 제노바와의 분쟁,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진출 가속화 등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1354년 퇴위했다. 퇴위 후 수도사가 되어 요아사프(Joasaph)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쳤으며, 『역사(Historia)』 4권을 저술하여 당시 정치·군사 상황과 본인의 통치 정당성을 기록으로 남겼다.
2.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메가스 도메스티코스, c. 1300–c. 1357) 요안니스 6세의 차남으로, 마테오스 칸타쿠지노스(Matthew Kantakouzenos)의 형이다. 아버지와 함께 내전에 참전했으며, 1347년 공동 황제 즉위식 후 메가스 도메스티코스에 임명되어 제국군 최고 지휘관으로서 활동했다.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오스만 투르크 및 세르비아군과 교전하다 전사하거나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동명 인물
-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드렁가리오스, 11세기): 11세기 중반 콘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코스 치세에 드룽가리오스(함대 사령관)를 지낸 인물로, 페체네그족 진압 작전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
-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학자, 15세기):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 전후 활동한 학자 및 성직자로, 고대 문헌 필사와 주석 작업에 관여했다.
- 오스만 제국 치하 판나리오티스(Phanariotes) 계층에서도 이 이름을 가진 외교관, hospodars(다뉴브 공국 통치자) 등이 다수 배출되었다.
가문사적 의의 칸타쿠지노스 가문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비잔티움 최고 귀족층을 형성하며 황제가(팔레올로고스 왕가)와 혼인 동맹을 맺고, 군부·행정부·교회 고위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요안니스라는 이름은 가문 내 전통적으로 선호되어, 시대별로 여러 인물이 동명으로 존재하므로 사료 인용 시 직위·연대·부계 등을 통해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