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요헨" 파이퍼(Joachim "Jochen" Peiper, 1915년 1월 30일 ~ 1976년 7월 13일)는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Waffen-SS) 장교이자 전쟁 범죄자이다. 최종 계급은 SS 연대지도자(SS-Standartenführer, 대령에 해당)였으며, 최종 직책은 제1 SS 기갑연대장이었다.
파이퍼는 1915년 베를린 빌머스도르프에서 중산층 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히틀러 청년단에 가입한 후 1934년 친위대(SS)에 자원 입대하였고, 1938년부터는 SS 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다. 부관 시절 동안 파이퍼는 힘러와 함께 점령지 폴란드에서의 민간인 학살, 유대인 수용소, 안락사 프로그램(T4 작전) 등을 목격하였으며, 이는 이후 그의 전쟁 범죄 연루의 배경이 된다.
1941년 동부 전선으로 전출된 이후, 파이퍼는 제1 SS 기갑사단 라이프슈탄다르테 SS 아돌프 히틀러(LSSAH) 소속으로 제3차 하리코프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그의 부대는 '블로토치 대대'(Lötlampenbataillon)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소련 점령지 마을에서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운 행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1943년 2월 우크라이나 예프레모프카와 세메노프카 마을에서 872명의 남녀노소가 그의 부대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이 중 약 240명은 교회에 갇혀 화형당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 보베스(Boves)에서 파이퍼의 전투단은 24명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보베스 학살을 저질렀다. 1944년 서부 전선에서는 아르덴 대공세(벌지 전투)에 참전하여 '캄프그루페 파이퍼'(Kampfgruppe Peiper)를 지휘하였다. 1944년 12월 17일, 그의 부대는 벨기에 말메디 인근 바뇌즈 교차로에서 미군 포로 84명을 기관총으로 사살한 말메디 학살을 저질렀다. 이 전투 기간 동안 캄프그루페 파이퍼는 총 362명의 전쟁 포로와 111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전후인 1946년, 다하우 수용소에서 열린 말메디 학살 재판에서 파이퍼는 전쟁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감형 절차를 거쳐 1951년 종신형, 1954년 35년형으로 감형되었고, 1956년 12월 가석방되었다. 출소 후에는 포르쉐와 폴크스바겐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였으며, 이후 프랑스 트라브(Traves)로 이주하여 영어-독일어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가석방 이후에도 전직 SS 장교들의 상호부조회(HIAG)를 통해 SS의 정치적 재활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6년 7월 14일, 프랑스의 바스티유의 날에 반나치 성향의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이 그의 주택에 방화하여 파이퍼는 연기 흡입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시신에서는 권총과 소총이 발견되어 저항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파이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장친위대를 미화하는 일부 대중문화와 신나치주의 집단에서 전쟁 영웅으로 숭배되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역사학계에서는 그를 나치 이데올로기를 체현한 무자비한 지휘관이자 전쟁 범죄자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