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 노부코(吉屋信子, Yoshiya Nobuko, 1896년 1월 12일 ~ 1973년 7월 1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에 활동하며 현대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생애
1896년 1월 12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으나 도치기현 모카시와 도치기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경찰관을 거쳐 지방 자치 단체의 공무원이었으며, 다섯 자녀 가운데 외동딸이자 막내였다. 부모는 모두 사무라이 집안 출신으로, 중산층이자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가정에서 메이지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인 '현모양처'를 위해 훈련받았다. 문학 경력은 10대 시절에 시작되었다.
1915년 도쿄로 이주한 이후 일본의 성별 기대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서양 패션을 모방한 최초의 일본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자동차와 경주마를 소유한 최초의 일본 여성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였다.
1938년 중일 전쟁 시기에는 일본 제국 군대의 노력에 호의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전면에 나선 작가들로 구성된 정부 조직인 '펜 부대'(ペン部隊)에 합류했다. 하야시 후미코와 함께 이 그룹의 유일한 여성 작가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반과 전후에는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살았다. 1962년에는 전통 목조 주택을 지어 여성의 문화 및 교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가마쿠라시에 기증했다. 1973년 7월 11일 가마쿠라시에서 대장암으로 향년 77세로 사망했다. 현재 그가 살았던 집은 요시야 노부코 기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한정적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묘지는 가마쿠라시의 고토쿠인에 위치한다.
몬마 치요와의 관계
1923년 1월, 도쿄의 한 여학교 수학 교사인 몬마 치요(門馬千代)를 만났다. 두 사람은 50년 넘게 연애 관계를 이어갔다. 1926년부터는 작가와 비서의 협력적인 업무 관계를 맺었으며, 1957년에는 요시야가 몬마를 자신의 딸로 입양했는데, 이는 당시 레즈비언들이 서로 재산을 공유하고 의학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방법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소련, 만주, 프랑스 파리, 미국, 네덜란드령 동인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등을 여행했다.
문학 경력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인 《꽃 이야기》(花物語, 1916년~1924년)는 연애 우정에 관한 52편의 이야기로 일본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락방의 두 처녀》(屋根裏の二處女, 1919년)는 반자전적인 소설로 추정되며 기숙사 친구들 사이의 여성 간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1920년 발표한 《지구 끝까지》(地の果まで)는 아사히 신문에서 문학상을 수상했다.
1925년에는 자신만의 문학 잡지인 《검은 장미》(黒薔薇)를 창간했으나 8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여인의 우정》(女の友情, 1935년), 《남편의 순결》(良人の貞操, 1937년), 《귀신의 불》(鬼火, 1951년), 《아타케가 사람들》(安宅家の人々, 1952년), 《도쿠가와의 아내들》(徳川の夫人たち, 1966년), 《여인 헤이케》(女人平家, 1971년) 등이 있다.
문학적 의의와 영향
동성애와 여성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의 소녀 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일본 고유 장르인 'S'(에스) 장르의 발전과 대중화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 평가된다. 요시야 노부코는 일본 레즈비언 문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여성 간의 우정과 이상적인 남성에 대한 관념이라는 두 가지 주요 주제를 탐구했다.
요시야 자신은 현대적 의미의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적은 없었으나, 다른 여성과 공개적으로 레즈비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그녀의 작품 상당수, 특히 초기 작품은 문학 평론가들로부터 반자전적이거나 레즈비언 문학 장르의 최초의 일본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정치적 견해
열렬한 페미니스트였으나 정당을 불신했고 조직적인 일본 페미니스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한편 중일 전쟁 시기에는 전쟁 협력적인 글을 작성한 점에서 문학의 전쟁 책임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