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나리 친왕(良成親王, 생몰년 미상)은 일본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의 황족이다. 이름은 '요시나리' 또는 '나가나리'로도 읽는다. 고무라카미 천황(後村上天皇)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나, 모친은 확실하지 않다. '고세이세이쇼군노미야'(後征西將軍宮)라고도 불렸다.
요시나리 친왕은 쇼헤이 21년/조지 5년(1366년), 가네요시 친왕(懐良親王)의 요청으로 규슈로 내려갔다. 가네요시 친왕은 고다이고 천황의 아들로, 규슈에서 남조(南朝)의 정서부(征西府)를 이끌며 북조 및 무로마치 막부에 대항하고 있던 인물이다. 요시나리 친왕은 쇼헤이 24년/오안 2년(1369년) 12월, 정서부에 의해 이요(伊予, 현 에히메현)의 고노 미치나오(河野通直)에게 파견되어 시코쿠 방면에서 남조 세력을 지휘하였다. 이후 규슈로 돌아와 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 무렵 가네요시 친왕으로부터 세이세이쇼군(征西將軍)의 지위를 넘겨받아 규슈 남조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요시나리 친왕이 정서부의 주도권을 잡은 시기는 이미 정서부의 세력이 크게 약화된 이후였다. 1372년(오안 5년) 다자이후(大宰府)를 북조 측에 빼앗겼고, 정서부의 핵심 무장이었던 기쿠치 다케미쓰(菊池武光)가 1373년, 그 적자 다케마사(武政)가 1374년에 잇따라 사망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요시나리 친왕은 기쿠치 다케아키(菊池武朝), 아소 고레타케(阿蘇惟武) 등을 이끌고 규슈 단다이(九州探題)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 이마가와 료슌)에 맞서 싸웠으나 열세를 면치 못했고, 세력을 잃은 끝에 지쿠고(筑後) 야베(矢部, 현 후쿠오카현 야메시 일대)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북조 통일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기록이 부족하여 알 수 없다.
메이지 시대에 남조 인물들을 현창하는 움직임 속에서,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시(八代市)의 야시로 궁(八代宮)에 가네요시 친왕과 함께 요시나리 친왕도 합사(合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