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슈 치카노부(楊洲周延, Yōshū Chikanobu, 1838~1912)는 일본 메이지 시대(1868~1912)에 활동한 우키요에(浮世絵) 판화가이자 화가이다. 본명은 하시모토 나오요시(橋本直義)이며, 도요하라 치카노부(豊原周延)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에치고국(越後国, 현재의 니가타현) 다카다 번주 사카키바라 가문의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노파(狩野派) 회화를 배웠으나 우키요에에 흥미를 느껴,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 우타가와 구니사다(歌川国貞), 도요하라 구니치카(豊原国周) 등 당대의 대표적 판화가들에게 차례로 사사하였다. 그의 화명(雅号)인 '요슈(楊洲)'는 작품에 서명할 때 주로 사용한 이름이다.
에도 막부 말기인 보신 전쟁(戊辰戦争, 1868~1869) 당시 그는 도쿠가와 측 충성파 부대인 쇼기타이(彰義隊)에 가담하여 우에노 전투와 하코다테 전투에서 싸웠다. 항복 후 일단 구금되었다가, 1875년(메이지 8년) 도쿄로 가서 본격적으로 판화가의 길을 걸었다. 신문사 《개진신문(改進新聞)》의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니시키에(錦絵, 다색 목판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광범위하다. 미인화(美人画, bijin-ga)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성의 의복·헤어스타일·화장의 시대별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연작 《시대거울(時代鏡, Jidai Kagami, 1897)》이 대표적이다. 또한 전쟁화(戦争絵, sensō-e) 분야에서도 보신 전쟁, 세이난 전쟁(사쓰마 반란),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 청일 전쟁(1894~1895), 러일 전쟁(1904~1905) 등을 주제로 한 삼폭 연작(三連続絵)을 다수 남겼다. 그 외에 가부키 배우 초상화(役者絵), 역사화(史教画), 명승지 풍경화(名所絵), 문명개화(文明開化)를 반영한 서양 문물 수용 장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에도 막부의 쇼군 저택이었던 지요다 성(千代田城)의 내부 생활을 그린 연작 《지요다의 대오쿠(千代田之大奥, 1894~1896)》와 《지요다의 오모테(千代田の御表, 1897)》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은 전통적인 일본 문화와 급속히 서구화되어 가는 메이지 시대의 과도기적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약 60여 개의 연작 시리즈와 3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06년경 판화 제작에서 은퇴한 후 1912년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와타나베 노부카즈(渡辺延一)와 나베타 교쿠에이(鍋田玉英) 등이 있다.